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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코로나 대유행, 세계질서 영원히 바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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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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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정책의 태두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97)은 4일(현지시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는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날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미국은 자국 시민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질서가 각자도생의 자국 중심적인 모습으로 흘러갈 수 있다면서 이런 흐름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공포를 2차 대전 막바지에 있었던 ‘벌지 대전투’에 비유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만든 초현실적 환경은 제84 보병사단에 소속된 젊은이로 벌지 전투에서 느꼈던 것을 되새기게 한다”면서 “1944년 말이 아닌 지금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닌, 무작위적이고 무차별적인 시작 단계의 위험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그러나 당시 미국은 국가적 목적 아래 단합돼 있었지만 현재의 미국은 갈라져 있다면서 강도와 범위 측면에서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효율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났을 때 많은 나라의 제도들은 실패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면서 “이런 평가가 객관적으로 온당한 것인지와는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세계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지도자들은 이 위기를 대체로 국가적 기반에서 대처하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사회 파괴 효과는 국경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인간 건강에 대한 공격은 바라건대 일시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촉발시킨 정치적·경제적 대격변은 수세대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을 포함해 어떤 나라도 이 바이러스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적 노력에만 안주할 수 없다”면서 “순간의 필요성에 대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구적인 공동의 비전과 프로그램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2차 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의 부흥을 위해 미국이 막대한 원조를 제공한 마셜 플랜과 2차 대전 중 핵무기를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서 3가지 영역에서의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첫째로 소아마비 백신 개발, 천연두 퇴치 등 인류가 질병을 상대로 이룩한 업적을 예로 들면서 “감염성 질병에 대한 지구적 회복력을 강화해야 하다”고 주문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둘째로 “세계 경제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경주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지도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중요한 교훈들을 배웠다”면서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더욱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위축의 속도와 규모는 인류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어떤 것도 넘어선다는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인구들에게 임박한 혼돈의 효과를 경감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

키신저 전 장관은 마지막으로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원리의 보호”를 주장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번영이 지구적인 무역과 사람들의 이동에 달려 있는 이 시대에 코로나19 대유행은 시대에 동떨어진 성곽도시의 부활을 촉진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각국이 코로나19에 대처하면서 국경을 강화하고 무역과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계몽주의의 가치들을 방어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통성 있는 균형유지 세력의 역할로부터의 후퇴는 국내적·국제적으로 사회계약의 해체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 각자도생에 나설 경우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우리는 신기원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 지도자들이 직면한 역사적 도전은 위기에 대처하는 동시에 미래를 세우는 것”이라면서 “실패는 세계에 불을 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취득하고 국제관계 강의를 하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인 1969년 대통령 안보 보좌관으로 발탁된 키신저 전 장관은 닉슨 행정부와 후임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거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이 외교정책과 관련해 조언을 받을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지만 냉전시절 남미와 아시아의 독재자들을 비호하고 전쟁을 기획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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