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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서초동살롱]조국과 조주빈 그리고 '피의사실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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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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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에서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씨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사진=김창현 기자 ch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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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을 이용해 불법 성(性) 착취 동영상을 공유하는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구속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가 저지른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를 처벌하고 재발을 막는다며 검찰, 경찰, 법무부, 여가부 등 유관기관에 각각 태스크포스(TF)가 들어섰다. 여기에 조주빈은 매일같이 수많은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조주빈이 경찰에 검거된 이후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그의 범행이 낱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그를 추적해온 이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수사기관만 알 수 있는 정보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대미는 얼굴 공개였다. 한 언론사는 지난달 23일 △추가 피해를 막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찾아 수사에 도움을 주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조주빈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다. 경찰이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기 하루 전날이었다.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되자 여론을 들끓었다. 조주빈은 그 순간부터 유죄였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그토록 막아야 한다고 외쳤던 피의사실공표가 대놓고 이뤄졌지만 아무도 제동걸지 않았다. 심지어 피의사실공표 금지를 주창했던 조 전 장관조차도 말이 없었다.

조 전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피의사실공표를 엄격히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장관은 부임 초기부터 피의사실공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재임 중 형사사건공개금지 규정을 만들었다. 그는 '티타임'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검찰 브리핑을 없앴고 기자와 검사 간 접촉금지 규정까지 만들었다. 처음에는 오보를 낸 언론사를 출입정지 시키겠다고까지 했었다. 이같은 압박에 검찰은 공개소환 제도를 없앴고 포토라인도 사라졌다. 조 전 장관은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는 동안 제대로 된 사진 한장 찍힌 적이 없다. 추 장관은 취임 이후 그동안 국회를 통해 공소장이 공개되던 관행을 철폐하겠다고 했다.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사회적 주요인물에 대한 공소장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통해 공개돼 왔으나 이는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했다. 피의사실이 아니라 이미 수사가 종료된 사안임에도 공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조주빈이 피의사실공표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를 잃고 있음에도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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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떠나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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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조주빈은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조국이 법원의 확정판결 전에 무죄라면 조주빈도 아직 무죄다. 하지만 지금 조주빈은 형이 확정된 연쇄살인범 못지 않게 비난받고 있다. 현 정부 법무부가 그토록 강조했던 무죄추정의 원칙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조국 무죄를 외치는 사람은 있어도 조주빈 무죄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 물론 둘의 죄질은 분명히 다르다. 둘을 같이 놓고 평가하는 게 무리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둘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고 헌법상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 받는다.

조주빈의 첫번째 사선 변호인은 "사건 내용이 들었던 것과 다르다"며 사임계를 제출했다. 법조계는 말도 안되는 이유라고 한다. 해당 변호사가 조주빈을 변호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변호사 사무실에 비난 전화가 쇄도했다. 홈페이지는 마비됐고 관련 기사에 악성 댓글이 이어졌다. 세월호참사 당시 이준석 선장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들이 "네 아들도 죽어봐" 식의 악성댓글에 연이어 사임했던 때와 비슷했다. 변호사의 갑작스러운 사임에 조주빈은 몇 차례 변호인 없이 검찰 조사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조 전 장관은 그와 가족 비리 의혹 수사에 호화 변호인단을 동원했다. 비난은 일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법조계는 말한다. 변호사가 비난받는다는 이유로 사건 수임을 안 한다면 그게 직무유기라고.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못박는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또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국과 조주빈이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다른 게 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하더라도 변호인을 선임하고 또 공정하게 재판 받을 기회는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정현 기자 gor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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