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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털린 재난기금… "태풍 안오기만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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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마다 현금 복지 경쟁

앞다퉈 재난기금에 손대고 정부는 빼쓰기 쉽게 시행령 손대… 자연재해 대처할 재원 비상

"하늘이시여, 비나이다. 올해는 제발 태풍, 지진이 나선 안 됩니다. 가뭄이 와서도, 돼지열병, 가축병도 걸려선 안 됩니다. 제발 올해만은 건너뛰게 해주소서." 경남 지역의 한 공무원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축원문을 올렸다. 그는 "지방자치단체가 어려운 사람을 가려내 구호 차원에서 자금을 써야 하는데, (이번에 지급되는 재난기본소득은) 직장이 있는 사람도, 생계가 어렵지 않은 사람도 돈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 글에는 동조하는 댓글이 여러 건 달렸다.

전국 지자체들이 홍수, 장마, 지진 등 각종 재난 대비를 위해 모아온 재난관리기금이 코로나 기본소득에 동원돼 고갈 위기에 놓였다. 상당수 지역의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로 생계를 위협받는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소득자 등 코로나 피해와 거리가 먼 주민에게도 지급한다. 모든 주민을 현금 살포 대상으로 하려다 홍수나 장마 등 실제 피해자에게 돌아갈 기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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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는 재난관리·재해구호기금 1073억원 중 27%가 이미 코로나 대응에 투입됐다. 그런데 기본소득까지 지급하면서 남은 돈도 곧 소진될 전망이다. 정부에서 주기로 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시 충당분과 소상공인과 취약 계층 지원금으로 책정한 1171억원 등 앞으로 쓸 돈이 기금 잔액을 초과한다. 울산시는 결국 의무 예치액 205억원에도 못 미치는 180여억원만 남겨둘 수밖에 없게 됐다. 울산시 공무원들은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16년 태풍 '차바' 때는 피해 복구액 1337억원 중 100억원이 재난관리·재해구호기금에서 투입됐다. 당시엔 경기가 좋아 지방세 등이 많이 걷혔으나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코로나로 세수도 줄어든 데다 최근 3년간 지방채를 1900억원어치 발행해 재정 형편이 나쁘다. 돌발 재난이 닥칠 경우 최악의 상황이 된다.

다른 지역에서도 코로나 현금 지원 때문에 재난기금이 바닥날 지경이다. 부산시는 재난관리·재해구호기금 1335억원이 지역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100만원씩 주는 긴급민생지원금으로 쓰이고 나면 적립액이 연초의 28% 수준(약 520억원)으로 뚝 떨어진다. 부산시 관계자는 "태풍 피해에 대비한 재난 대비 예산은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1377억원에 이르던 재난관리·재해구호기금이 500억원으로, 36% 수준으로 쪼그라들 위기다.

서해안을 끼고 있어 풍수해를 많이 겪는 충남도는 재난기금 753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의 도(道) 부담분을 제하고 나면 60% 가 한꺼번에 소진돼 313억원만 남는다. 2015년 유례없는 대가뭄 때 재난관리기금 53억원을 투입했던 기억이 생생한 충남도 공무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일부 기초단체는 아예 잔액이 텅 비었다. 경기도 화성시는 독자 재원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시민 1인당 20만원씩 83만명에게 나눠주기로 했는데, 이로 인해 500억원의 재난관리기금 중 의무예치금 50억원만 남게 된다. 화성시는 "홍수나 가뭄 등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은 예비비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 같은 끌어 쓰기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까지 마련해줬다. 2일 공포된 재난안전법 시행령 코로나 특례조항(75조의2)이다. 코로나 사태로 소상공인·취약 계층을 위해 재난관리기금을 쓸 수 있도록 명시하고, 꼭 필요한 용도로 쓰기 위해 반드시 별도 예치해야 했던 법정예치금(총 적립액의 15%)까지 쓰도록 했다. 양현모 기획재정부 예산낭비신고센터 전문위원은 "긴급한 재난·재해에 대비해 쌓아놓은 기금을 단기간에 대거 투입할 경우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며 "정부와 지자체들이 용처와 투입 한도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정하고 준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울산=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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