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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때 日王 방한 추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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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1988∼1989년 기밀문서 24만쪽 공개 / ‘과거사 청산’ 문제로 결국 무산돼 / 6억달러 차관 주고 헝가리와 수교 / ILO가입, 노동운동 격화 우려 보류 / 임종석 주도 임수경 방북 공개 안해 /“현 정권 의식” 지적에 외교부 부인

세계일보

동·서 데탕트 물결을 타고 활발한 북방외교를 펼쳤던 노태우 정권이 1989년 2월 동유럽 최초로 헝가리와 수교하는 조건으로 최소 1억2500만달러 상당의 은행차관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6억5000만달러 상당의 경제 협력을 약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연례 외교문서공개제도’에 따라 만들어진 지 30년이 지난 1988∼1989년 외교 기밀문서 1577권(24만여쪽)을 31일 공개했다. 1988년 8월12일 한국과 헝가리가 체결한 수교 합의의사록을 보면 한국이 제공하기로 약속한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은행차관의 절반, 즉 1억2500만달러를 제공한 뒤에야 양국이 교섭에 착수하게 돼 있다. 이외에도 한국은 헝가리에 외국인직접투자(FDI) 등을 포함 6억5000만달러의 경제협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수교 협상 직전인 1988년 6월 국가안전기획부 보고서에는 “헝가리 측 제시 액수는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부담 가는 규모”라고 적시돼 있다. 정부는 ‘다른 국가와의 수교 및 경협 확대 시 동종 요구 가능성’이라고 우려했는데 그해 11월 폴란드와 수교하면서도 4억5000만달러 경협을 제공했다. 동구권 국가들과의 수교로 이후 이들 국가와의 경제 협력에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지만, 초기 노태우 정권이 차관 제공으로 공격적인 북방외교를 추진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1990년 전후로 일왕 방한 초청을 둘러싸고 한·일이 적극 검토한 과정도 밝혀졌다. 정부는 1989년 6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듬해 일본 방문을 준비하면서 방일 이후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방한을 고려할 것을 외교 과제로 제시했고 일본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 요구와 함께 반대 여론이 높아졌고, 일본에서도 우경화 흐름이 강해져 성사되지 못했다. 외교문서에는 1989년 10월 노 전 대통령 방미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평민당 총재)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기소에 대한 미 의회 내 일부 의혹 제기로 대통령 의회 연설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정도 드러나 있다. 또 당시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을 추진했지만 노동운동 격화 우려로 보류했다.

이번에 기밀 해제된 외교문서에는 그해 가장 큰 북한 관련 이슈였던 더불어민주당 임수경 전 의원의 방북 사건과 관련된 문서가 포함돼 있지 않다.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이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방북을 주도했다. 임 전 의원은 한국외대 재학 중이던 1989년 6월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와 동베를린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임 전 의원의 방북을 전후해 외교부 본부와 각 재외공관이 관련 동향 등에 대한 공문을 주고받았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일각에선 현 정권을 의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비밀방북했는데 외교문서가 방북 과정에서 하나라도 생산됐는지 모르겠다”며 “간략하게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문서이기도 하지만 개인 문서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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