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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여의도TMI]유급 연차휴가 강제 논란, 딜로이트 안진 지배구조 흔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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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 "부당 노동행위" 주장

논란 커지면 딜로이트 글로벌 개입 빌미될까

결론 어떻게 날지 주목

여의도 증권가는 돈 벌기 위한 정보 싸움이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쪽지와 지라시가 도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인 곳입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내용까지 알게 되는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TMI일 수도 있지만 돈이 될 수도 있는 정보, [여의도 TMI]로 풀어봅니다.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안진이 직원들의 반대에도 ‘블록 홀리데이’ (Block Holiday) 휴무일 추가 지정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딜로이트 안진은 전 임직원에게 창립기념일인 4월 1일을 전후해 나흘간 유급 연차휴가 사용을 사실상 강제해 논란이 일었죠.

이에 반발하는 직원들이 언론사에 제보를 하거나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는데, 딜로이트 안진은 회계감사본부에 한해 유급 연차휴가와 ‘리프레시 휴가’ 가운데 선택해 사용하라는 선에서 일단락 지었습니다. 리프레시 휴가는 일정 수준 이상 초과근무를 하면 보상 차원에서 부여되는 휴가입니다. 정해진 기간 내 쓰지 않으면 자동 소멸하고, 이 경우 지급되는 수당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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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별다른 해명 없이 블록 홀리데이를 일방적으로 늘리는 결정을 고수한 데다 회계감사본부 소속이 아닌 임직원들을 역차별한 셈이어서 되레 반감이 커졌습니다. 뿔이 난 직원들은 딜로이트 글로벌에 딜로이트 안진이 취한 부당 노동행위를 호소하자는 극단적인 처방을 꺼내 들 태세입니다. 기사나 벌금보다 경영진이 느낄 압박감이 크다고 본 거죠.

딜로이트 안진이 블록 홀리데이를 명목으로 유급 연차휴가 소진을 강권하는 것은 연차수당을 아끼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입니다. 마침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명분이 뒷받침됐고요. 그러나 실상은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 딜로이트 안진은 “직원 개개인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유급 연차휴가 소진은 강제가 아니라 권고”라고 반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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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설명이 먹혀들지 않아 논란이 계속 커진다면 향후 딜로이트 안진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뇌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출범한 홍종성(사진) 대표 체제가 고작 1년밖에 안 됐는데 부당 노동행위 논란에 휩싸인다면 딜로이트 글로벌이 국내 문제에 손을 댈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내부통제를 중시하는 해외 회계법인 눈에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걸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지난달 초 돌연 중도 사임한 서진석 전 EY한영 대표도 임직원들과 불화를 겪는 와중에 EY글로벌에 익명 투서가 들어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 전 대표가 비용 절감을 위해 임직원들에게 근로시간을 축소 신고하라고 종용한 게 결정타가 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론 EY한영은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요.

‘빅4’라는 한울타리 안에 있으나 딜로이트 안진과 EY한영은 글로벌 회계법인과 관계 정립에 차이가 있다죠. EY한영은 한 몸(원펌)처럼 운영되는 반면 딜로이트 안진은 딜로이트 글로벌과 긴밀히 협조(멤버펌)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딜로이트 안진과 딜로이트 글로벌은 엄연히 독립된 상호 대등한 관계라는 주장입니다. 딜로이트 글로벌이 딜로이트 안진 지배구조에 간섭할 리 만무하다는 거죠.

다만 이건 2016년 이전까지 상황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딜로이트 안진은 2017년 이후 수차례 딜로이트 글로벌로부터 긴급 자금을 수혈받아 둘 사이는 피를 나눈 형제로 거듭났습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장단기 차입금은 180억7170만원가량입니다. 딜로이트 안진이 딜로이트 글로벌에 이자로 연 3.23%~4.19%를 지급하고요. 이런 금전 지원 덕에 딜로이트 글로벌이 딜로이트 안진 인사에 직접 개입할 정도로 입김이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딜로이트 안진은 낭설이라고 일축하죠. “딜로이트 글로벌이 국내 현행법을 따르고 있는 딜로이트 안진 지배구조에 관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나저나 딜로이트 안진은 다 계획이 있었던 걸까요. 전 직원에게 이번 지침을 이메일로 전달한 인물은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경영지원본부장이라고 합니다. 홍 대표는 책임 소재에서 일단 한 발 비켜나 있는 것입니다. 일부 딜로이트 안진 직원들은 이런 중차대한 전사적인 결단을 CEO 메시지가 아니라 ‘CFO 레터’로 받은 게 처음부터 석연치 않았다는 반응입니다. 이에 대해 딜로이트 안진 관계자는 “예년에도 블록 홀리데이 관련 공지는 경영지원본부장 명의로 발송해왔다”며 과잉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전혀 다른 뜻은 없다고도 강조했습니다.

한편 딜로이트 안진은 지난 2017년 딜로이트 글로벌이 제휴관계 청산을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돌아 홍역을 치른 바 있습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12개월 부분 영업정지(신규 감사계약 금지) 조처를 내린 민감한 시기였습니다. 분식회계가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외부감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대형 회계부정 사건에 연루돼 딜로이트 글로벌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거죠.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지만, 딜로이트 안진 처지에서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이번 블록 홀리데이 논란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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