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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소라넷 후예가 박사방 그놈…디지털 성범죄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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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대화방에서 책임도 나눠진다고 느껴 죄의식 희석"

"조직범죄로 규정해 처벌하고 피해자 2차 가해 막아야"

뉴스1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0.3.2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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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이비슬 기자 =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은 행위자가 죄의식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6일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단'(특수단)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휴대전화 메신저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 성착취 범죄가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낼 만큼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수면 위로 등장하기 전부터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폭로해 왔다. 텔레그램·디스코드·위커·와이어 같은 온라인 대화방에서 성착취물 제작·유포·관전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성범죄에는 기존 '오프라인' 범죄와 구별되는 점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도드라진다.

이윤호 동국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26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은 행위자가 죄의식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라며 "성착취물 유포·제작 행위 주체가 피해자에게 물리적인 타격을 주는 경우가 드물고 온라인상에서 은밀하게 유통돼 신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주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사실상 '공범'인 대화방 관전자도 죄의식을 잘 느끼지 못한다"며 "'누구나 다 성착취물을 보고 공유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죄의식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필요성도 못 느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는 "(음란물 공유 확산으로) 관전자들은 일반인과 음란물 배우를 구분하지 못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며 "또 단체로 관전하다 보니 책임의 분산이 이뤄져 죄책감 역시 나눠진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n번방 박사(조주빈), 와치맨, 갓갓 등 관련 성 착취 방 운영자,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0.3.25/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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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든 관전자든 성착취물 이용 과정에서 대부분 유혈 낭자 식의 충돌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 '상대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온라인 대화방 특성상 얼굴과 개인정보 등을 숨길 수 있어 적발과 단속 부담에서 최대한 벗어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는 경향이 확인된다.

대표적인 예가 '조주빈'이다. 그는 한 언론과의 텔레그램 대화방 인터뷰에서 자신은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다고 속였다. '무직'인 조씨는 자신을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신원을 철저하게 속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씨의 범행 동력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이는 관전자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이다.

법조계에서는 아동·청소년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높여 강도 높게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대법원 젠더법연구회 소속판사 등 법관 11명은 지난 25일 '솜방망이 처벌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다크웹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에서 영상 1000건을 내려 받은 사람의 처벌 수위는 징역 4개월, 70건을 내려받은 사람은 벌금 300만원에 불과했다. 법관들은 그러나 "미국에서는 해당 사이트에서 영상을 한 번 내려받은 사람이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선고받았다"고 강조했다.

이하영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는 "이용자들이 야동을 성착취물이나 성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게 큰 문제"라며 "성매매도 불법이란 점을 알지만 단속 처벌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성착취물 이용도 처벌받는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100만 회원 중 운영자 단 1명만 처벌받았던 '소라넷'과 같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의 텔레그램 성착취방 사태를 만들었다"며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를 '조직범죄'로 규정해 처벌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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