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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솜방망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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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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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n)번방’ 사건의 근본 배경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른 처벌이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을 마련 중인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 전 대법관)가 이런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하지만 현직 판사들이 양형위원회의 설문조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내용을 보면 우려되는 지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25일 밤 법원 내부 게시망에 오른 글에서 판사 11명은 현재 양형위원회가 판사들을 상대로 진행 중인 설문조사에 대해 “이대로라면 ‘솜방망이’ 처벌이 재탕될 우려가 있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설문조사에서 14살 여자 청소년의 성착취 영상 제작·판매·배포·소지 범죄에 대한 양형을 물었는데, 법정형보다 지나치게 낮은 양형기준만 보기로 제시한 것이다. 영리 목적 판매(법정형 10년 이하)나 배포(7년 이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연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영상 범죄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형량 감경의 대표적 사유로 ‘처벌 불원’ 등이 제시된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실 속 강간 등과 달리 디지털 성범죄는 한번 유포되면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피해가 지속될 수 있다. 합의 사실이나 처벌 불원을 주요 감경 사유로 삼는 것은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처사다.

한국 사회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은 지난해 다크웹 수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에선 영상 한번 내려받은 사람이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받았지만, 우린 1천건을 내려받은 사람이 징역 4개월, 심지어 사이트 운영자는 초범이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징역 1년6개월에 그쳤다. 혐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법정형 자체가 낮은 것도 아니다. 문제는 정해진 법정형을 훨씬 밑도는 선고가 내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26일 기자회견에서 “법령이 있음에도 기존에 디지털 성범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수사기관과 법원, 변호인 등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영상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시대적 흐름을 무겁게 인식하길 바란다. 또 법원 내부와 여성가족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과정도 거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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