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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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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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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스콘신에 사는 키티 오메라씨가 코로나19로 자가 격리 중 쓴 시. SNS 캡처


그리하여 위험이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잃은 것을 애도하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새로운 모습을 꿈꾸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치유 받은 것처럼 지구를 완전히 치유해 나갔다./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화제를 모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미국 위스콘신주 메디슨시에 사는 키티 오메라라는 여성이 써서 열흘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전 세계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오메라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남편 그리고 다섯 마리 반려견과 함께 자가 격리 중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했던 그는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옛 동료들에게 힘이 되고자 시를 썼는데 작가도 아닌 자신의 글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오메라씨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는 지금이야말로 평소 시간이 없어서, 남 눈치 보느라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해볼 수 있다며, 코로나 19에 의기 소침해 있지 말고 이를 기회 삼아 변화를 만들어 보자는 긍정의 메시지를 담았다. SNS에서는 특히 지구 전체가 치유될 수 있다며 ‘코로나19 너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고 힘이 난다는 반응이 많다.

유럽, 미국,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야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코로나19 이후는 상상할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진정 국면에 들어선 한국은 포스트 코로나19를 고민해 볼 때가 됐다. 물론 그 시작은 눈 앞에 닥친 역대급 경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대책을 만들어 실행하는 것이 돼야겠지만 외교, 교육, 복지, 노동,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문제가 있으면 고치고 바꿀 건 바꿔야 한다.

당장 코로나19 때문에 사람, 자동차의 이동이 줄면서 세계 곳곳의 공기가 깨끗해지고 물이 맑아지고 있다는 소식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환경을 살릴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전 세계 61개 나라 157개 도시에서 쓰레기 이동 문제를 취재한 뒤 최근 ‘쓰레기책’을 내놓은 이동학씨는 “코로나19가 잦아들고도 이전과 똑같은 삶의 방식을 이어간다면 공기도 물도 나빠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걱정했다.

이씨는 책에서 쓰레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자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로 옮아갔을 뿐이며 전 세계 절반이 쓰레기로 차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이후를 고민할 때 전 세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 나라가 만들어낸 쓰레기는 각자 끝까지 책임지기로 원칙을 세우고 모두 지키도록 해야 한다. 쓰레기 처리할 돈이 모자란 국가는 다른 국가나 국제기구들이 십시일반 도와야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학 교수이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를 쓴 유발 하라리는 20일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글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를 맞아) 우리는 국수주의적 고립과 세계적 연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고립은 지구촌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 경고했다.

전염병 자체와 경제적 위기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나라의 협력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바이러스를 이겨 내기 위해서는 정보와 의료 장비를 공유하고, 경제 위기도 공급 사슬의 특성을 감안할 때 전 세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또 경제인 과학자 의사들에게는 서로 국경을 열어야 한다. 바이러스에게는 국경이 없으며 나만 살겠다고 문 잠근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육지에서 1,000km 떨어진 외딴섬 갈라파고스에는 왜 확진자가 나왔겠나.

오메라씨는 “무지하고 위험하고 생각 없고 가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지구가 치유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새로운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코로나19 너머를 맞이하자.

박상준 이슈365 팀장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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