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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텔레그램 성범죄 처벌 청원, 누가 ‘누더기’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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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국회 청원 때 10만명 동의

국회 ‘딥페이크 처벌’ 추가 그쳐

법사위 회의록 안이함 드러내

김인겸 “n번방 사건 저도 잘 몰라”

김도읍 “청원한다고 다 법 만드나”

송기헌 “일기장 그림까지 처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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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등을 통한 성착취 범죄에 대한 분노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정작 이를 처벌할 법안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난 1월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직접 국회 국민동의청원 시스템에 올라온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텔레그램 성범죄 해결 청원)에 동의했지만, 정작 국회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조금 손보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 1월10일부터 실시된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30일 동안 10만명의 국민이 동의하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고 관할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도록 하는 제도다. 텔레그램 성범죄 해결 청원은 국민동의청원 시스템에서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첫 국민 청원이었는데, 텔레그램 성범죄 해결을 위해 국제 공조 수사와 수사기관의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5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일부 개정해 연예인이나 지인의 사진을 합성해 불법영상물을 만드는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실제 지난 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국회의원 및 관계자들의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안일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딥페이크 처벌 규정 신설과 관련해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소위 ‘엔(n)번방 사건’이라는 (것)은, 저도 잘은 모른다”며 “자기는 (딥페이크 영상물을)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의원은 “청원한다고 법 다 만듭니까”라며 “굳이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나. 법정형 가중처벌 양형은 법원에서 알아서 해도 되는데 굳이 이런 구성요건이 필요하나?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일기장에 혼자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발언했다.

전문가들은 무한 유포 및 재생산이 가능하고 완벽한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한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령 성착취물 공유나 시청 자체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 협박죄나 강요죄 등으로 에둘러 처벌할 수밖에 없는 불분명한 현행 법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취지다. 김현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변호사)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성착취물은 구체적인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이를 유통하는 경우 더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성범죄를 따로 조율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부뿐 아니라 사법부도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양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오선희 변호사는 “법원은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관대한 처벌을 해왔다. 각종 범죄의 선고 기준을 정하는 대법원 양형위에서 우리 사회 가치관에 반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실형 선고 원칙을 마련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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