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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반민주적 정치인 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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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8세, 투표소 가는길에]

【편집자주】만 18세의 생애 첫 투표, 그 시작을 파이낸셜뉴스가 응원합니다. 4.15 총선 페이지 오픈을 맞아 기획칼럼 '만 18세, 투표소 가는 길에'를 연재합니다. 진정한 민주시민의 권리인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만 18세들에게도 축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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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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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민주적 정치인을 구별하는 방법은 없을까.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독일에서 태어난 후안 린츠라는 정치학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민주주의가 왜, 그리고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조명했다.

일명 '리트머스 테스트'라는 반민주적 정치인을 가려내는 감별법을 개발해 민주주의 붕괴를 촉진하는 양심불량 정치인을 고발한다는 취지다. 비록 최종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후대의 학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4가지 경고신호를 개발했다.

우선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거나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언론의 자유를 포함해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4가지 유형의 정치인을 반민주적 정치인으로 규정했다. 일명 정치인 감별법이다.

특히 '정치는 생물'이라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수시로 바꾸며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는 기회주의 정치인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정치인들은 보통 유권자보다 특정 집단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일치시키는 데 관심이 더 많다.

멋진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자꾸 '정치공학'을 들먹이고, 주권자인 국민이라는 수사를 별생각 없이 남발하는 정치인들도 경계대상이다. 이들은 매체에 나올 때만 국민을 들먹일 뿐, 나머지 시간은 국민과 상관없는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데 집중한다.

사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과거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지금까지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닌 차악이라는 불명예를 들어야 했다. 민주주의는 태생이 위태로운 제도다. 모든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해 공평무사한 정책을 도출한다는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귀족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귀족제가 민주주의를 가장한 '엘리트연합'이라는 형태로 변형돼 존속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것도 겉으로는 대의제를 표방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낡은 정치관행이 고쳐지지 않아서다. 아인슈타인은 "정신이상이란 꼭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행태"라며 정치인들의 속성을 꼬집었다. 정신이상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정치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결국 자신들이 국민의 대리인이 아닌 그 지위와 특권에서 파생되는 온갖 특혜와 권력의 맛에 길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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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이번 21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의사를 표출할 만 18세의 젊은 유권자들의 행보가 기대되는 것도 그래서다. 만 18세 유권자들은 앞으로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투표로 입증할 책무가 있다. 누가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의지와 역량을 갖췄는지 꼼꼼하게 분석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할 시대정신은 '공생과 상부상조'의 원리에 따른 삶을 재창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보다 공공의 이익을 앞세우고 공동체 정신에 기여하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지금처럼 대기업과 일부 소수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구조로는 생산적 미래를 열어가기에는 힘이 벅차다.

꼰대짓도 모자라 과거 퇴행적 언사를 남발하고 국민과 국가를 들먹이며 애국자인 것처럼 포장하는 정치인은 이번 기회에 젊은 유권자들의 힘으로 도태시켜야 한다. 그것이 젊은 유권자들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 사회를 건설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주춧돌이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에서 주목할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프랑스 혁명가 미라보백작은 "대의기구는 언제나 인민의 축소판이어야 한다."고 비례대표의 이상을 천명했다. 아쉽게도 이런 정신을 담은 비례대표의 전면적 도입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최소한의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취지에서는 평가할만하다. 물론 소선거구제가 대부분 유지되면서 민주적 대표성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다.

사실 선거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요식행위일 뿐 기득권층의 영구집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애써 이를 무시하거나 현실이 그렇다는 순응주의와 체념주의는 이런 현상을 더 강화하는 법이다. 이 같은 선거제에서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가진 신생 정치세력의 출현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모든 시민들이 바라는 건강한 정치, 합리적인 국가운영이란 실상 별 것이 아니다. 특정집단의 사익이 아니라 국가와 세계 전체의 공통이익을 우선시하는 공공의 정신에 입각한 정치의 국정운영이 그것이다.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최대 원리는 규범의 준수다. 무엇보다 '제도적 자제'라 일컫는 규범 준수는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요체다. 쉽게 말해,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말한다. 인내, 절제, 양보, 타협 등의 자세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 제도의 원리다.

제도적 자제의 반대는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다. 이를 법학자 마크러 쉬넷은 '헌법적 강경태도'라고 규정했다.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하지만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상대방을 밀어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오로지 경쟁상대자를 없애버리기 위한 전투 자세다. 한국 정치지형에서 많이 보는 익숙한 풍경이다.

견제 받지 않는 대통령의 권력 남용도 문제지만 의회가 막강한 힘을 지닐 경우 문제가 커진다. 예산 권한을 빌미로 행정부를 혼란에 빠트리고 석연치 않은 근거를 내세워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위험성은 상존한다.

그래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 그러나 정치를 바꾸는 힘은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럭셔리한 소파에서 와인을 마시며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축배를 드는 얼치기 귀족행세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번 선거는 광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정치적 파워가 어떤 건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만 18세 유권자들이 바라는 정치는 그들 손으로 쟁취해야 한다.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ktit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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