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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공매도 규제 강화했지만-한발 늦은 공매도 금지…깡통계좌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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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매도 조치를 잇따라 내놨지만 한발씩 뒤처지는 느낌이다. 타이밍 놓치고 찔끔찔끔 발표하는 바람에 전혀 정책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한 대형 운용사 펀드매니저 얘기다. 개미투자자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매도 금지’ 조치가 강화됐다. 그러나 주가 폭락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업계에서는 이참에 공매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3월 13일,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화를 위해 공매도를 6개월간 전면 금지했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일평균 공매도 거래금액은 3180억원이었으나 올해 1~2월 4527억원으로 늘었다. 지난 12일에는 8722억원까지 치솟았다. 과도한 투매 우려 속에 공매도 금지 카드가 나왔다. 이후 공매도 금지는 효과를 보는 듯했다. 금지 발표일과 그 전일 공매도 거래 비중이 20%를 넘었던 호텔신라, 이마트, 아모레퍼시픽, 오리온 등은 3월 16일 그 비중이 10% 미만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대책은 ‘찻잔 속 작은 미풍’에 불과했다. 발표 이후 코스피는 10% 넘게 빠지며 10년 만에 1600선이 붕괴됐다. 2008년 10월, 2011년 8월 모든 주식에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려졌으나 주가는 계속 떨어졌던 사례와 유사하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 조치가 너무 늦었다고 주장했고,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지적에 대해 변명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매경이코노미

개미투자자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매도 금지’ 조치가 강화됐다. 그러나 주가 폭락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3월 19일 코스피는 1450선마저 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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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조성자에게 적용된 공매도 예외조항을 없애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한발 늦게 움직였다. 시장 조성자는 주식시장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매도·매수 양방향의 호가를 제시하도록 한국거래소와 계약을 맺은 투자자 또는 기관을 말한다. 9개 국내 증권사와 3개 국외 증권사 국내 법인이 시장 조성자로 활동한다. 이들은 유동성을 공급할 의무가 있다.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매도 등을 통한 헤지(위험 회피) 거래는 필수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이들에게 공매도 거래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헤지 거래, 시장 조성 호가 등을 투기성 공매도로 볼 수 없고 시장 유동성 공급을 위해서는 공매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시장 조성자 제도가 공매도 과열종목은 물론이고, 금지종목도 공매도가 가능하고 업틱룰(호가 제한 규정)도 예외 적용받아 시세 조종 수단으로 악용된다”며 “시장 조성자 역시 예외 없이 공매도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외국인과 개인에 대한 공매도 금지 조치가 전면 시행된 지난 3월 16일에도 시장 조성자 공매도(코스피+코스닥)는 4686억원에 달했다.

결국, 금융위와 한국거래소는 당분간 시장 조성자의 공매도 의무 내용을 유예하기로 했다. 사실상 유동성 공급을 위한 시장 조성자 공매도까지 중단시킨 셈이다. 한국거래소는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한화투자증권, 골드만삭스 등 12개 시장 조성자에 ‘공매도 축소 과정에서 의무 미이행에 따른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이 같은 방침을 알렸다.

구체적으로 시장 조성자는 그동안 의무적으로 정규 시장(오전 9시~오후 3시 30분) 내 공매도를 해야 했지만 이제는 절반의 시간 내에만 공매도를 하면 된다. 또 838개 시장 조성 종목 가운데 419개에 대해서만 공매도를 해도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 호가 스프레드(매수·매도 가격 차이) 역시 거래소와 계약으로 정한 범위(4~8틱, 가격 단위)에서 절반(2~4틱)으로 줄인다. 매도·매수 양방향 호가 격차를 줄여 거래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증시 안정화는 쉽지 않을 듯 보인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글로벌 패닉을 불러왔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계량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위기 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세력이 늘며 투자자 심리가 위축될 수는 있지만 근원적 시장가치와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공매도는 실제 가치에 부합하는 주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주가가 급격히 오를 때 공매도 세력이 손절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이는 정부가 언급하지 않는다. 정부가 개인투자자 눈치를 너무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한 외국 운용사 관계자는 “공매도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조치”라며 “공매도를 아예 금지시키면 롱쇼트 펀드가 한국에서 활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주가를 끌어내릴 가능성이 있는 다른 수단이 막히지 않았다는 점도 공매도 금지 효과와 명분을 희석시킨다. 현재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을 예측하고 주식이나 지수 선물을 매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효과는 공매도와 비슷한데 규제 대상에서는 빠졌다. 이외 하락장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다. 이는 현물과 선물의 괴리만 키워 결국 정보에 어두운 개인투자자 피해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결정은 시장 조성자 유동성 공급 의무를 줄여서라도 공매도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면서 “현재와 같은 급락장에서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유동성이 줄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가 폭락에 증권사 반대 매매 급증

개인투자자 ‘깡통 계좌’ 속출 우려

공매도 금지와 함께 증권사 반대 매매가 잦아들지 관심거리다.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연이어 폭락하자 주식 반대 매매 규모가 약 11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의 ‘깡통 계좌’ 속출 우려가 커졌다. 주식 미수금이 더 쌓이고 증권사가 강제 처분에 나선 부실 주식이 늘어난 것이다.

미수금은 개인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고 사흘 후 대금을 갚는 초단기 외상이다. 반대 매매는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빌려 투자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했을 때, 증권사가 채무자 의지와 상관없이 반대 매매 주식 수량과 매도가를 정해서 파는 행위를 말한다.

증권사는 통상 빌린 금액의 130~140%가량을 고객 잔고(결제일 예수금+신용주식 평가금액+현금주식 평가금액)로 잡아왔다. 금융당국은 반대 매매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신용융자 담보비율 유지 의무를 면제했다. 증권사도 이에 맞춰 신용공여 담보주식 반대 매매를 억제하기 위해 반대 매도를 1~2일 유예하고 담보유지비율을 낮추는 등 탄력적인 운용을 시작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16일부터 증권사 7곳은 고객이 요청할 경우 반대 매도를 1~2일 유예해오고 있다. 이 중 2곳은 지점장 재량으로 반대 매도를 유예한다. 일부 증권사는 담보유지비율을 130%에서 125%로 5%포인트(2곳) 낮추거나, 130%에서 120%로 10%포인트(1곳) 낮췄다. 고위험 종목 담보유지비율(160%)을 140%로 하향 조정한 곳도 있었다.

금융투자협회는 “시장 상황에 따라 각 사별 조치 내용은 변경될 수 있다”며 “각 증권사별 이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있고 약관 변경, 고객 안내 절차 등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실히 준수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51호 (2020.03.25~2020.03.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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