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30 (월)

[단독] 경제 불안 타고 불법 금융상품 기승…다단계식 ‘변종 달러보험’ 소비자 주의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법인보험대리점(GA) 업계를 중심으로 경제 불안을 파고든 ‘변종’ 달러보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부 GA 보험설계사들이 홍콩 보험사의 역외보험 상품을 ‘해외직구’ 마케팅으로 포장, 이를 국내 소비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달러보험을 팔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원화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자 불안감을 교묘히 자극한 것이다.

GA를 자회사로 둔 보험사에서는 소속 설계사들에게 이 같은 보험의 불법적 판매를 경고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에서는 대내외 경제 환경이 엄혹한 가운데 GA 업계의 시장 교란 행위가 이어지는 것에 관해 강도 높은 검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최근 GA 업계에서 홍콩 역외보험을 ‘해외직구 달러보험’으로 포장해 판매하는 변칙 영업이 판치고 있다. 역외보험은 국내 금융 소비자가 국내 외국계 보험사와 임직원 등을 거치지 않고 외국 보험사의 상품을 우편, 전화, 팩스 등을 통해 직접 계약하는 것을 일컫는다. 대한민국 외 국가 법령에 따라 설립돼 대한민국 외 국가에서 보험업을 영위하는 금융사가 ‘외국 보험사’로 분류된다.

매경이코노미 취재 결과, 홍콩 역외보험은 자산가와 의사 등 전문직을 중심으로 판매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점조직 형태로 음성적으로 가입이 이뤄져 정확한 판매 규모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국내에서는 GA와 일부 브로커가 홍콩 현지 판매사 소속 혹은 비소속 대행사(agent)를 끼고 보험료 카드납, 해외송금 등 직구 형태로 가입을 진행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 적을 둔 한 브로커에게 직접 문의해봤다. 역외보험 브로커들이 밀고 있는 상품은 홍콩 소재 A보험사의 저축성 보험상품이다. 세일즈 포인트는 크게 2가지다. 원화는 불안하며 안전자산으로 기축통화인 달러자산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서는 거의 없는 유배당 상품으로 배당률이 높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이들은 평균 예상 수익률로 연 복리 6~7% 수준 배당을 강조했다.

홍콩 직접 방문이 부담스럽다는 질문에는 신탁사를 낀 우회로를 제안했다. 이 브로커는 “20년 이상 홍콩에서 영업하고 있는 직원 300여명 규모의 신탁사와 계약을 맺으면 수탁을 받은 신탁사가 보험의 계약자가 돼 보험계약을 대신할 수 있다”며 “한국에서 사인 후 서류만 보내면 된다”고 설득했다.

매경이코노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역외보험 판매 경로 탈법적

수수료 받고 다단계식 판매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은 크게 3가지다.

우선 역외보험의 판매 경로가 탈법적이다. 보험업법에서는 가입 가능한 역외보험 종류를 생명보험, 수출적하보험, 수입적하보험, 항공보험, 여행보험, 선박보험, 장기상해보험, 재보험 등으로 제한한다. 이 외 국내 3곳 이상 보험사가 인수를 거절한 보험 종목의 경우 역외보험에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외보험 가입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업법 제3조에는 ‘누구든지 보험회사가 아닌 자와 보험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를 중개 또는 대리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즉, 홍콩 역외보험은 판매 형태가 합법적이지 않고 이에 따른 불완전판매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문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홍콩 역외보험은 대부분 GA 쪽 설계사들이 높은 판매수수료를 받고 많이 판매하는 것으로 안다”며 “국내에서는 설계사만 보험 모집을 할 수 있는데 홍콩 보험은 다단계처럼 일반인 소개로 모집하고 일반인이 수당을 받는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판매 형태가 실질적으로 다단계와 비슷한 구조”라며 “생명보험은 사망 사고가 생기면 정확히 어떤 경로를 거쳐 처리되는지도 불분명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역외보험 브로커들이 강조하는 6~7%대 배당률이나 높은 환급률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또 가입 설계 시에는 중도 인출이나 미납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중도 인출 시 배당은 뚝 떨어질 수 있다. 조기 해약 때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외화 투자상품이기에 환차손 우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불완전판매가 불거져도 국내에서는 이를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보험업법 제4조에 따르면 국내에서 보험업의 영위를 허가받은 외국 보험사업자의 국내 지점은 예금자보호법 적용 대상 금융기관이다. 그러나 ‘외국 보험사’는 보험업법 허가를 받은 회사가 아니므로 국내 감독기관의 자산건전성 유지, 책임준비금 적립 등 지급 능력 확보를 위한 감독을 일절 받지 않는다.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감독당국이 관련 민원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

해외 배당의 탈세 논란은 소비자 피해와는 또 다른 차원의 쟁점이다. 현재 국내 저축성 보험은 특정 기간과 금액 요건을 만족할 경우 비과세 혜택을 준다. 저축성 보험은 적립식 5년 이상 납입, 10년 유지 등의 조건을 충족할 때, 월 적립식 150만원 한도, 일시납 1억원 한도 보험에 한해 보험금 수령 시 비과세된다. 문제는 해당 세법에서 해외 보험의 경우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할 때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해외금융소득세법상 해외 배당소득은 종합과세로 규정한다. 다만, 역외보험의 해외 배당에 관해 과세당국의 해석이나 관련 판례가 없다 보니 일부 가입자가 이 같은 ‘회색지대’를 악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객이 아예 작심하고 해외 배당소득을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을 경우 외환관리법 위반 소지가 있어 홍콩 역외보험은 여러 가지로 갈등의 가능성을 많이 내포한 상품”이라고 귀띔했다.

보험업계에서는 홍콩 역외보험이 국내에서 판을 치는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한 가지 설득력 있는 해석은 수년 전부터 본토인을 상대로 한 홍콩 보험사들의 ‘달러 영업’이 사실상 막힌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에서는 본토인들의 홍콩 달러보험 수요가 급증하면서 경계감이 고조됐다. 많은 본토 자산가가 ‘에셋 파킹(asset parking)’ 일환으로 해외 자산 투자를 늘리는 과정에서 역외보험을 활용했고 그 결과 본토에서는 자본 유출 압력이 커졌다. 에셋 파킹은 자산과 주차의 합성어로 ‘자산을 안전한 곳에 주차(투자)한다’는 의미다. 급기야 중국 금융당국은 수년 전부터 본토인을 상대로 한 홍콩 보험사 달러보험 판매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이런 조치에서 비롯된 ‘풍선효과’로 홍콩 보험사들이 자산가가 많으면서 통화가치가 불안한 한국을 겨냥, 본토 영업 공백을 메우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GA 업계에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건전 영업행위가 끊이지 않는 것을 심상찮게 보고 있다. 지난 1월 금감원은 GA의 불건전영업행위를 다수 적발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했다. 홍콩 역외보험 판매는 워낙 음성적으로 이뤄져 당시 조사에서도 이상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관계자는 “GA 업계 검사와 감독은 강화되는 추세로 영업 관련 모니터링과 검사가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보 수집이 이뤄진다”며 “문제 상품의 거래가 집중되거나 급증하는 보험대리점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연계 검사를 벌여 사실관계를 확정한 뒤 보험업법에 따른 해촉 혹은 과태료 부과 등의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51호 (2020.03.25~2020.03.31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