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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TV는 재방송료 주는데…탑골 영상 사용료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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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재가공 콘텐츠 저작권 화두

과거 영상 활용 각종 콘텐츠 인기

광고 붙고 수익 늘면서 경쟁도 치열

방송사들 새 수익 사업으로 확장

온라인 저작권 문제 화두에 올라

창작자들 “재가공 활용은 사전 협의 필요”

방송사들 “제2의 양준일 못 나와…시기상조”

온라인 콘텐츠 시장 중요해지면서

‘추후 논의’ 계약서 명기 움직임도

전문가 “건강한 성장 위해 고민은 필요

…협회 차원에서 논의해 볼 필요성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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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리베카’를 부르던 영상 속 양준일은 2019년 <뮤직뱅크> 무대에 올라 다시 ‘리베카~’를 찾았다. 노임 협상을 하며 “사딸라”를 외치던 2002년 <야인시대>(에스비에스) 속 김영철은 17년이 지난 2019년 화장품 광고를 찍었다. 모두 인터넷이 매니지먼트를 했다. 과거 영상이 유튜브 등에 소개되며 요즘 시청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것이다. 인터넷은 예전 콘텐츠만 데려온 게 아니다. 요즘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3분 안팎으로 쪼갠 이른바 ‘클립’ 영상이 화제 몰이의 중심에 선다. 포털에 올라온 클립 영상을 보고 재미있으면 본방송을 찾아본다는 이들도 많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인터넷이 활발해지면서 이제 신구 콘텐츠를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인터넷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 재가공 영상 화제 모으며 수익사업화

탑골 콘텐츠, 클립 영상…. 인터넷이 빚은 이런 현상이 콘텐츠 유행을 선도하면서 덩달아 화두에 오른 것이 콘텐츠 재사용·재가공에 대한 저작권 문제다. 지금까지 누리꾼들이 재미 삼아 올리던 차원을 넘어 이제는 방송사들까지 가세해 자체 아카이빙을 활용한 수익사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분야별로 디지털국을 따로 만드는 등 인터넷 콘텐츠 싸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에스비에스>의 경우 한개였던 유튜브 채널이 자체 제작물까지 포함해 30여개까지 늘었다. 과거 영상을 올리는 채널과 ‘요리’ ‘동물’ 등 분야별로 재가공한 영상만 따로 올리는 채널이 <빽드> <스브스 밥집> 등 10개를 넘어선다. <한국방송>도 <케이비에스 클래식>과 <크큭티비> 등에서 과거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문화방송>이 영상을 주제별로 핵심만 추려 내보내는 <오분순삭>은 누적 조회수가 1억뷰를 이미 넘어섰다. <문화방송>도 <옛송티브이> <옛능> 등에서 과거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를 언급할 수는 없지만 매년 수익이 늘고 있는 것은 맞다. 화제가 되니 광고가 붙는다. 디지털 콘텐츠 사업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미 2014년부터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가 공동 출자해 디지털 콘텐츠 유통회사인 스마트미디어렙(SMR)을 세우고 본편 티브이 클립과 프로그램 예고, 선공개 영상 등을 포털과 유튜브에 제공하는 등 지상파가 직접 디지털 콘텐츠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 저작권 문제 대두…“동의받아야” “시장 축소”

지금 당장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모바일이 중요한 광고 시장이 된 상황에서 이런 시도가 결국 지상파 수익에 무시 못 할 영향을 끼칠 날이 올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한다. 이런 이유로 창작자들은 콘텐츠를 재사용·재가공하는 방송사의 주요 수익사업으로 자리 잡기 전에 온라인 콘텐츠 저작권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방송사들이 사용하는 콘텐츠의 소유권은 대부분 방송사에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재가공하고 재편집해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고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출연자, 제작자들의 사전 동의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저작권법에도 ‘영상저작물의 수정 시에는 동일성유지권자인 저작자와 실연자의 동의를 모두 받을 필요가 있다’고 명기돼 있다. 한 대형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저작권법상 원본을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재판매를 할 수 있겠지만 재가공은 못 하게 돼 있다”며 “광고가 붙는 등 방송사의 수익사업이 되는 만큼 돈을 떠나 이 부분은 엄연히 사전에 논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계약서에 온라인 전송권 관련 내용이 명기돼 있긴 하지만 원본 그대로의 재판매·재전송 등을 말하는 것이지 재가공된 콘텐츠는 아니라는 것이다. 배우들이 많이 소속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재방송을 할 경우 적지만 재방송료가 나오는 것처럼, 온라인 콘텐츠로 재가공할 경우 초상권 차원에서 사용료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아직은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크지 않은 만큼 이런 논의 자체가 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송사들은 “이제 시작인 상황에서 이런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한 케이블 예능 피디는 “양준일이 화제를 모은 것은 제약 없이 영상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하나 허락을 받고 올려야 한다면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규제가 제2·제3의 양준일 탄생을 막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이미지 훼손 등의 우려로 연예인 쪽에서 문의하면 해당 영상을 내리는 식으로 배려하는 상황이다. 한편에선 연예인들의 출연료가 높게 책정된 데는 그런 활용도까지 다 포함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 케이블 피디는 “제작비의 대부분이 출연자들 출연료로 들어간다. 그런 비용 책정에는 프로그램 전후 홍보비와 재가공비 등이 포함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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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계약서에 권리 명시…한국도 논의 나서야

하지만 창작자나 실연자의 권리가 중요한 시대인 만큼 합리적인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 지난 2월 스마트미디어렙이 포털을 넘어 아프리카티브이와도 영상 전송 계약을 맺는 등 방송사의 온라인 사업은 갈수록 확장되고 있다. <한국방송>도 3월부터 <느낌> <딸부잣집> 등 추억의 드라마 10편을 10분으로 요약한 ‘10드’ 시리즈를 자사 유튜브 채널에 선보이고 있다. 지상파·종합편성채널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유튜브 등에 시정조치를 요구한 사례만 2019년 한해 동안 15만건을 넘을 정도로 온라인의 저작권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화제를 모은 옛날 드라마에 출연한 한 중견 배우는 “이런 통로를 통해 다시 젊은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좋지만, 방송사도 배우도 모두 프로인 만큼 사전에 동의라도 구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든다”며 “돈을 떠나 어떤 권리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우 기획사 관계자도 “초창기인 만큼 배우들은 둘째 치고, 제작사와는 수익 분배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온라인 콘텐츠 수익은 당시 계약에 따라 다르겠지만 옛 콘텐츠의 경우는 주로 방송사가 유튜브 등 해당 미디어와 분배한다.

외국은 온라인 부분을 따로 계약하는 곳도 있다. 특히 초상권 문제에 엄격한 일본이 그렇다. 일본의 유명한 아이돌 기획사는 소속 그룹의 한국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논의하면서 온라인 전송을 불허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한 케이블 예능 피디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본방송보다 온라인 소비가 더 중요해졌는데, 일본 소속사의 경우 본방송을 온라인에서 활용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요구해 출연이 불발된 바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에 따라 ‘온라인 재편집 등의 경우 보상에 대해 추후 논의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실제 계약서에 이런 조항을 넣은 한 방송인의 소속사 관계자는 “홍보 차원에서 출연 영상을 재가공해 포털에 공개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묵인을 해왔는데, 어느 날부터 광고가 붙기 시작하는 등 방송사가 이를 활용한 수익사업에 뛰어들었다. 초상권도 협의가 안 됐고, 성명권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돈을 떠나 최소한 사전에 협의는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여러번 시도 끝에 이런 조항을 넣게 됐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와 달리 온라인에서의 소비가 중요한 시대가 된 만큼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좋은 방법을 고심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재방송, 음원 등의 지급 사례처럼 연기자협회나 실연자협회 등 협회 차원에서 논의해보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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