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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설진훈 칼럼] 2차 逆오일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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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흔히 오일쇼크 하면 유가 급등을 떠올린다. 1970년대 초반과 후반 각각 중동전쟁과 이란의 석유 수출 중단에서 촉발된 게 1·2차 오일쇼크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는 그때마다 심한 몸살을 앓았다. 때아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가마저 초유의 폭락 사태를 맞고 있다. 과거와 정반대여서 ‘제2차 역(逆)오일쇼크’라 부른다. 1차 역오일쇼크는 2014년 발생했다. 그해 중반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았던 WTI(서부텍사스산원유)가 연말 40달러 선까지 60% 이상 폭락했다. 당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을 저가 공세로 죽이기 위해 치킨게임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스타트업 기술로 무장한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채굴 단가를 배럴당 80달러 선에서 50달러 선으로 무섭게 끌어내리며 오히려 채굴량을 더 늘렸다.

현재 2차 역오일쇼크도 “감산 않고 누가 오래 버티는지 한번 해보자”는 치킨게임 성격이 짙다. 물론 코로나19 사태로 항공기나 전 세계 공장들이 일시 셧다운돼 기름 수요가 급감한 게 도화선이다. 얼마나 수요가 줄었으면 지난주 초 싱가포르에서 거래된 휘발유 가격이 원유가를 오히려 밑돌았다. 정제비용 등을 감안하면 휘발윳값이 최소한 10% 이상은 비싸야 정상이다. 수요 측면을 고려해도 국제 원유 가격 하락폭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크다. 1월 말 60달러를 웃돌았던 WTI가 3월 18일 20.37달러까지 폭락하며 두 달 새 3분의 1토막이 났다. 1991년 걸프전 같은 특수 상황을 제외하고는 단연 역대 최고 낙폭이다. 일부 투자은행(IB)은 극적 반전이 없는 한 20년 만에 유가 10달러대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는다.

문제는 이런 유가쇼크가 우리나라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당장 대형 정유업체들은 1분기에만 수천억원대 영업순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중동에서 배로 기름을 싣고 오는 데만 2개월이 걸리는데 그사이 원윳값이 폭락해버린 탓이다. 물론 석유나 천연가스 등을 많이 사용하는 전력이나 항공업계는 저유가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코로나19로 인한 선진국 수요 급감 탓에 예전만큼 저유가 수혜를 누리기 어렵다는 게 아쉽다.

어쨌든 이번 역오일쇼크를 진정시킬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인 듯싶다. 첫째는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미국이 팽팽하게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치킨게임을 멈추는 것이다. 20달러대 유가에 가장 애가 타는 쪽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 것이다. 이미 셰일오일 업체들이 발행한 고위험채권(정크본드)에서 대형 사고설이 솔솔 나온다. 이를 기초로 발행한 수조달러 규모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 등에서 부도가 나기 시작하면 제2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번질 위험이 크다. 코로나19 감염 환자 수는 유럽보다 훨씬 적은데 미국 주가 등락폭이 더 큰 이유기도 하다. 결국 트럼프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팔을 비틀든,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구워삶든 감산 협상장으로 끌어들여야 해법이 나올 것이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치료 백신이 하루빨리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하세월이다. 결국 산유국 정상들이 하루빨리 협상 테이블에 앉는 길밖에 없는 듯싶다.

[주간국장 jinh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51호 (2020.03.25~2020.03.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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