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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취재수첩] 코로나 추경, 지원 규모보다 ‘전달’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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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대출 자금 28억원 중 아직 24억원이 남았습니다. 2000만원씩 120명에게 대출해줄 수 있는데도 아직 신청자는 40~50명에 불과합니다.”

얼마 전 만난 사회적 금융 비영리법인 ‘신나는조합’ 관계자의 말이다. 귀를 의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이 몰리며, 전국 지역 신용보증기금에 접수된 대출보증 신청이 수십만 건에 달하는 요즘 아닌가. 그런데도 대출 자금이 이렇게 많이 남았다니!

심지어 조건도 더 좋다. 신나는조합은 극빈층 대상 무담보·무신용 소액 대출(micro credit) 사업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한국지부로 설립된 기관이다. 지금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창업·운영 자금을 1.8% 이자만 받고 대출해주는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지원사업’을 서울신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한다.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여도, 창업한 지 6개월이 안 됐어도 최대 30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은퇴한 은행 지점장들이 대출 심사역으로 재능 기부 활동을 하며 2개월마다 무료 컨설팅 등 사후관리도 해준다. 전문가의 객관적 조언을 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그럼에도 신청이 저조한 이유를 묻자 ‘잘 알려지지 않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장 기자가 출연하는 자영업 전문 팟캐스트 ‘창업직썰’과 라디오 방송에서 해당 사실을 알렸다. 반응은 역시나 뜨거웠다. 하루 종일 전화 문의가 빗발치고 홈페이지는 트래픽 과다로 다운됐다. 목하 영세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보여준다. ‘괜스레 일을 떠안긴 것 아닐까’ 걱정됐지만 관계자는 “잘된 일이다”라며 반가워했다.

코로나19 사태에 영세 자영업자는 만원 한 장이 아쉬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지원을 못 받는 것은 곳간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전달’이 제대로 안 돼서다. 이런 식이라면 추경을 12조원이 아닌, 120조원을 써도 소용이 없다. 지원 규모보다 효과적 전달에 더 힘써야 할 때다.

매경이코노미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51호 (2020.03.25~2020.03.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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