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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그들과의 낯선 ‘동거’ 결국 우리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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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청, 예멘 난민 백서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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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 정책 사건 최초의 기록물

예멘인들과 만나 겪은 경험 생생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질문 던져


외국인의 출입국 사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제주출입국외국인청(제주청)은 ‘육해공군이 모두 있는 곳’으로 통한다. 이들이 상대하는 외국인들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제주도를 오가고, 짧거나 길게 섬 곳곳에서 머문다. 그래서 제주는 출입국·외국인 정책의 ‘테스트베드’(시험무대)로 여겨진다. 이런 제주에서도 예멘인들은 낯선 존재였다. 2000년대 초반 한 해 2~3명 정도의 예멘인이 제주를 찾았지만 연간 방문객은 두 자릿수를 넘지 못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예멘인 26명이 제주를 찾았다. 2017년 52명을 더해도 5년간 제주를 방문한 예멘인은 78명뿐이었다. 2018년, 그러니까 ‘제주 예멘 난민 사태’가 발생한 그해는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언론 보도는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했고, 제주는 물론 곳곳에서 난민 관련 찬반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2018년 6월 시작된 난민심사는 12월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총 561명의 예멘인이 입국했고, 그중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이 중 제주에서 난민심사를 받은 인원은 484명. 난민으로 인정된 건 2명이었고, 인도적 체류 허가자가 412명, 단순 불인정 56명, 직권종료 14명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제주청이 새롭게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018년 7월 제주청을 찾은 영국 가디언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제주청은 예멘 난민들이 대규모로 입국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부터 이 일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지난해 9월 만들어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등 관련 부처에만 공개한 것이 ‘2018 제주 예멘 난민 백서’다. 내부용으로 제작된 이 백서는 경향신문이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인하기 전까진 존재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김도균 전 제주청장(현 한국이민재단 이사장)은 “그들은 지옥 같은 전쟁으로 (자국에서) 살 수 없으니 평화의 섬 제주에 머물게 해달라고 난민신청을 한 것이었다”며 “제주 예멘 난민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백서를 남겼다”고 했다. 백서 작성을 담당한 최춘수 난민팀장은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한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에”라고 썼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고 감명 깊은 글귀를 휴대폰에 메모해두던 그는 백서를 쓰면서 동네 도서관을 찾으며 제주로 찾아온 예멘 ‘사람’들에 대해 고민했다. 백서 속에는 건조한 사실관계와 함께 ‘출입국 담당자’나 ‘난민 심사관’이라고 불리는 공무원들이 사람 대 사람으로 예멘인들과 만나 겪은 경험과 후기도 담겨 있다.

◆전담팀 꾸리고 아랍어 통역관 부르고…다시 없을 특별한 난리 겪고 깨달은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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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인 난민 신청자들이 2018년 9월14일 제주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을 나서고 있다. 1차 난민심사 결과가 발표돼 예멘 난민 23명에게 인도적 체류허가가 내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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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주 예멘 난민 백서’ 나오기까지

2018년 5월 신입 직원 연수 중이던 이상겸 반장은 ‘제주에 가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아랍어 특기자로 특별채용된 4명 중 하나였다. 제주에 500여명의 예멘인 난민이 들어왔는데 전문 통역인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연수를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에 발령이 난 지 이틀 만에 ‘부름’을 받았다. 새 일터에서 가까운 집을 구하던 차에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제주로 날아갔다. 2018년 6월이었다. 그로부터 1년6개월이 흘렀다. 이 반장은 아직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제주청)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예멘인들의 난민심사와 체류지 관리 등을 마친 지금은 제주에 정착해 살고 있는 예멘인들과의 크고 작은 의사소통을 담당하고 있다. 제주에 온 예멘인 중 이 반장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반장은 제주에 오기 전 주레바논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한 뒤 중동 국가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지만, 정작 레바논에서는 테러 정보 등을 통·번역하거나 영어 등 다른 언어를 쓰는 일이 많았다. 일상생활에서 생생한 아랍어를 쓸 기회는 생각만큼 흔치 않았다. 이 반장은 제주에서 예멘인들을 만나면서 보다 능숙한 아랍어를 구사하게 됐다. 하루 종일 아랍어만 사용하는 날도 있을 정도였으니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언어 능력이 단련됐다. 제주 곳곳에 퍼져 살았던 예멘인들을 만나러 다닌 덕에 이제는 ‘육지’에서 가져온 아버지 차로 내비게이션 없이도 구석구석 잘 다닌다.

제주도청이 직접 나서 유치한 말레이시아 직항, 그 비행기 타고 온 예멘인들…당시 지휘관 김도균 청장 “예민인들이 제주를 찾은 건 운명”

여유롭던 제주청, 난민신청자들 몰리며 전국서 가장 바쁜 출입국 도청으로…출입국외국인청장·심사 사무관·정착지원 과장·통역 반장·접수 반장 똘똘

심사 발표까지 6개월 걸리는데 돈 없어 노숙하는 난민들과 그것으로 인한 도민들 불안 듣고 문제 해결 동분서주…공무원 대 난민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져

이 반장의 경험은 당시 제주청이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예멘 난민들이 오기 전까지 제주청의 주 업무는 중국인 관광객이나 체류자 등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난민신청 건수도 매달 20~50명 정도로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종교 때문에 난민신청을 한 중국인이었다. ‘난민팀’도 따로 없이 난민신청과 관계된 모든 일은 직원 한 명이 담당했다.

2018년 5월 한 달 동안에만 432명의 예멘인이 제주로 입국했다. 난민신청이 이어지자 제주청은 별도의 팀을 만들었다. 당시 제주청에서 난민신청을 담당하고 있던 이은경 사무관과 심사과의 임이지 반장 그리고 공익근무요원 등 지원인력으로 구성된 총 3명의 전담팀이 꾸려졌다. 다른 과에서도 업무를 지원했다. 처음엔 전용 공간도 없고 사무기기도 변변찮았다. 인쇄기가 따로 배치되지 않아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른 부서에 가서 복사를 해왔다.

여유롭던 제주청은 전국에서 가장 바쁜 출입국 관청이 됐다. 매일 새벽 예멘인들이 청사로 모여들었다. 난민신청 등 절차상 서너 차례 이상 출입국사무소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500명 가까운 이들이 매일같이 주차장 앞 벤치나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번호표가 없어 새벽부터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지자 나중에는 예멘인들이 먼저 온 순서대로 번호를 적어 두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제주청 입구 처마 밑에 70여명이 빽빽하게 서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 “예멘인들이 제주를 찾은 건 운명 같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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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지휘관이었던 김도균 전 제주청 청장(현 한국이민재단 이사장)은 2018년 한 해 동안 예멘 난민 사태를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부터 전국을 돌며 출입국 관련 업무를 맡은 베테랑이었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 처음에는 잠시 지나가는 일이려니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난민 반대’ 청원글이 20만명을 넘어서자 “여기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김 청장은 “예멘인들이 제주를 찾은 건 운명 같은 사건”이라고 말한다. 제주가 그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2017년 12월12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와 제주국제공항을 잇는 아시아 최대 저비용항공사 에어아시아의 직항 노선이 취항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란으로 급감한 중국 관광객에 대한 우려와 관광객 다변화 전략을 위해 제주도청이 직접 나서서 유치한 노선이었다. 예멘인들은 바로 이 비행기를 타고 왔다.

백서를 쓴 최춘수 난민팀장은 공항심사과에서 일하면서 직항 노선 취항 뒤 드문드문 예멘인 방문객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이들이 관광을 오는 거라고 여겼다. 직항노선으로 생긴 일시적인 개항 효과라고 봤다. 그런데 2018년 4월 무렵부터 매일 5~6명이 꾸준히 눈에 띄었다. “왜 제주에 예멘 사람들이 많이 오는 건가요?” 예멘인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확산되면서 예멘에서는 끝 모를 내전이 이어졌다. 인구 2957만명의 나라에서 기아 상태인 인구가 1200만명, 예멘 내 피란민만 200만명, 내전 사망자는 1만명에 달했다. 해외로 떠난 난민·망명 신청자는 28만명에 육박했다. 예멘인들은 포화를 피해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건너간 이들이 많았다. 다만 말레이시아는 난민협약에 가입되지 않아 합법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거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말레이시아~제주 직항 노선이 신설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먼저 한국에 간 아랍 난민들의 이야기를 접한 예멘인들이 한국행을 택했다고 했다. 중동 국가 예멘의 난민들이 ‘평화의 섬’ 제주에 오게 된 배경은 이랬다.

“말레이시아에 예멘 난민들이 수만명 있다고 하는데, 다들 여기(제주)로 오고 싶어 한다더군요. 제주 입국하는 난민들에게 그 얘기를 듣고 난민이 대규모로 입국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을 거 같아서 4월에 관련 내용을 정보보고했습니다.”(최춘수 팀장)

2018년 4월30일 출도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국적 불문하고 제주 무사증 입국 제도로 들어와 난민신청을 한 모든 외국인이 그 대상이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 대부분이 난민신청을 한 뒤 육지로 떠났다는 정황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2018년 1~4월 입국한 예멘인은 129명이었는데 이 중 5명만 출국하고 124명이 난민신청을 했다. 체류지 제한 조치가 내려지기 한 달 전인 3월 말까지 난민신청을 한 96명 중 94명이 다른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제주청이 우려하던 대규모 입국은 2018년 5월2일 현실로 나타났다. 에어아시아 D7501편에서 81명의 예멘인이 내렸다. 드물게 이어진 입국 행렬이 대규모로 확대된 것이다. 5월8일에는 말레이시아를 단순 경유해 예멘에서 제주로 바로 입국한 난민도 등장했다. 제주가 예멘 난민들의 피란지로 널리 알려졌다는 신호였다.

제주청의 고민은 깊어졌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만들어진 무사증 제도를 통해 입국하는 난민 신청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무사증 제도는 관광을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이들에게 30일 동안 제주에 체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관광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이 비자를 받지 않고 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가 도입된 뒤 일본인 관광객이 주류였던 제주에는 중국인들이 오기 시작했고, 이어 동남아 등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예멘인이 관광을 위해 제주에 온다면 이를 막을 근거는 없었다. 또 난민신청이 예견된다는 이유로 외국인의 입국을 불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난민신청을 위해 제주로 오는 이상 관광객 유치라는 무사증 입국 제도 본래의 취지를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다는 게 당시 제주청의 판단이었다. 2018년 6월1일 예멘인은 제주 무사증 입국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뒤로 예멘인들의 제주행은 멈췄지만, 이미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 500여명이 난민신청을 마친 상태였다. 난민심사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6개월 동안 제주도민들에게는 예멘인과 이웃해 살아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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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500여명의 예멘인이 제주에 몰리면서 가장 문제가 된 건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저렴한 숙소를 구하더라도 고향을 떠난 예멘인들의 주머니는 늘 가벼웠다. 어렵게 구한 숙소에서 여럿이 모여 지내거나, 노숙을 감행하는 이들도 있었다. 호텔 검색 사이트가 찾아준 저렴한 ㄱ호텔에 예멘인들이 몰렸다. 2018년 5월16일 당시 기준으로 입국자 350명 중 160명이 ㄱ호텔에 짐을 풀었다. 호텔 김모 대표는 싼값에 방을 내어주거나, 주방을 열고 빵과 주스를 제공했다. 예멘인들은 김 대표를 ‘아빠’라고 불렀다.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청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난민심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예멘인을 위한 취업설명회를 개최한 것이다. 사실 출입국 관리 업무를 맡는 제주청 입장에서 그들의 취업 문제까지 해결해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돈이 없어 노숙하는 예멘인이 생기면서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범죄에 대한 우려가 불거졌다. 일단 낯선 이웃들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제주도민들의 불안도 가실 거라는 판단에서 파격적인 정책을 감행한 것이다. 제주청은 6월 두 차례에 걸쳐 취업설명회를 열었다. 한국인들이 취업을 기피해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업종을 위주로 직접 사업주들을 모아 예멘인들과 연결시켜줬다.

제주 곳곳으로 일자리를 구한 예멘인들이 떠나자 체류 현황 관리라는 새 업무가 생겼다. 이 일을 담당한 게 강영우 관리과장이었다. 강 과장은 당시 예멘인들의 체류지 조사를 담당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일을 떠맡았다. 그는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서 가장 바빴던 제주청 직원 중 하나였다. 낚시를 좋아해 주말이면 제주 곳곳을 다니는 ‘낚시광’인데 그 좋아하는 오징어낚시를 2018년에는 한 번도 못했다. 체류지 관리뿐만 아니라 외부 기관이나 언론과의 조율도 담당한 그의 전화는 하루에도 수백번 울렸다.

◆“언제든 찾아올 난민 문제, 예멘 난민 백서를 ‘기출문제’ 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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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김도균 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오른쪽)이 예멘인 난민 신청자가 제주에서 낳은 사내아이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 전 청장은 이 아이에게 ‘제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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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신청자 484명 심사 결과

인정된 난민은 단 2명에 불과

대부분 인도적 체류허가 받아

“명백한 내전 상황에 처한 이들

가짜 난민으로 몰아선 안돼”

제주청 직원이 의견 내기도


강 과장은 통역 담당 이상겸 반장과 콤비를 이뤄 제주를 누볐다. 6월부터는 휴일도 없이 지냈다. 6월 말 태풍이 상륙하기 전 비바람이 불던 날이었는데, 어선에 취업한 예멘인과 관련 민원을 처리하던 강 과장에게 연락이 왔다. 오후 7시쯤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숙소를 구하지 못해 노숙을 하려는 예멘인들이 있다는 전갈이었다. 강 과장은 허겁지겁 숙소 수배 전화를 돌렸다. 다행히 서귀포에 있는 숙소를 제공받게 돼 대형버스를 이용해 4곳의 가정을 옮겨줬다. 방 2개에 기본적인 살림살이가 갖춰진 큰 숙소를 신혼부부 두 쌍에게 배정해주었는데, 이 부부들이 난색을 표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아내의 맨 얼굴을 다른 남성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한 집에서 두 쌍의 부부가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신경질이 났습니다. 지금이 ‘그런 거 가릴 때인가’ 싶었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예멘인들에게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사안이고 결코 가볍게 여길 부분이 아닐 수도 있겠더군요. 그때부터 예멘인들과 만날 때는 뭔가 실수하는 게 없을까, 조심하게 됐습니다.”(강영우 과장)

통역하는 이 반장도 예멘인과 만나며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예멘인 여성과 대화할 때는 더욱 조심했다. “예멘인들이 모여서 걸어다닌다” “밖에 모여 이야기를 한다” “노숙을 한다” 등 주민들의 민원을 예멘인들에게 전달해야 할 때도 노골적인 표현을 쓰지 않으려 주의했다. 피부색이 다른 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배려하려 애썼다.

“실내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잡혀서 바깥으로 나오는 예멘인들이 많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외국인들이 밖에 몰려다닌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무서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많이 들어왔어요. 예멘에서도 낯선 외국인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쳐다보거나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도 피부색이 다른 예멘 사람들을 보고 놀라고 무서워할 수 있다고 그들에게 얘기해줬어요. 그 설명을 듣고 그들도 이해해줬습니다.”(이상겸 반장)

■ 예멘인과의 만남으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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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14일까지 세 차례에 걸친 난민심사 결과가 모두 발표되면서 수개월 동안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마무리됐다. 500여명이 짧은 시간 안에 입국해 난민신청을 한 첫 사례였다. 난민 신청자 484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난민심사에서 대부분이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도적 체류허가(412명)를 받았다. 난민으로 인정된 건 단 2명이었다.

난민 인정자가 이처럼 적었던 건 예멘 입국자 대부분 난민법이 정하고 있는 5대 박해 사유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난민법은 인종, 종교, 국적, 신분, 정치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난 이들을 난민으로 보기 때문에, 전쟁·내전 등을 피해 고향을 탈출한 이들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다. 그래서 인도적 체류 허가라는 제도가 있지만, 국내에 체류하며 할 수 있는 활동에 제약이 크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지켜나가기 힘들 수밖에 없다.

제주청에서는 “예멘 난민들처럼 명백한 내전 상황에 있던 이들을 난민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직원도 있었다. 내전 상황을 피해 온 이들이 취업을 한다고 해서 경제적 난민이나 가짜 난민이라고 몰아서는 안된다는 얘기였다. 또 한국에 오게 된 난민들의 처우를 개선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에 이미 정착했다면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빈곤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범죄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청에서 난민심사를 주로 맡았던 이은경 사무관은 “난민심사에 대해서 그동안 집중해왔는데, 이미 들어온 난민들의 처우를 개선해줄 수 있도록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각종 도움이 모두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예멘인들을 지켜본 직원들

“난민에 대한 생각 바뀐 계기”

취업관리 체계화·심사 다양화 등

백서에 문제점과 개선방안 제시

김도균 전 청장, 난민 자녀에게

한국 이름 ‘제민’ 지어주기도


백서에는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와 개선방안도 제시됐다. 난민 신청자를 위한 취업관리 체계화, 해외 기관과의 공조 강화, 난민 신청자에 대한 적절한 안내, 심사 방법의 다양화 등이다. 수개월간 예멘 난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제주청 직원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됐고, 난민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에는 예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어떤 사람들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 떠도는 난민에 대한 이야기나 유튜브 영상 등을 봤는데, 이슬람 남성들을 성범죄자라는 식으로 묘사한 내용들이 많았어요.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예멘인들과 계속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강영우 과장)

김도균 전 청장은 제주에서 예멘 난민 자녀가 태어나자 ‘제민(濟民)’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줬다. 태어난 제주를 평생 기억하고, 구제받은 사람으로서 남들을 구제하는 사람으로 자라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는 12월 난민심사 결과를 모두 발표한 뒤에는 설명하기 힘든 허탈감도 함께 느꼈다고 했다. “정년도 남았고, 승진의 기회도 없지 않았지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에 두 번 없을 큰 사건이었죠. 예멘 난민 사태를 한 해 동안 온전히 겪으며 이 조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제주를 찾았던 예멘인들 중 일부는 새로운 살길을 찾아 육지로 떠났고, 일부는 제주에 머물고 있다. 김 전 청장은 “제주에 남은 예멘 난민들은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들을 맞이했던 제주청 직원들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숨가빴던 시간들이 지나고 그때의 경험과 반성 등이 예멘 난민 백서에 고스란히 담겼다.

백서의 끝에 최 팀장은 “출입국 60년사에 굵직한 사건이 많았지만, 책으로 남긴 기록물은 찾아보기 힘들고 백서는 발간한 적이 없다”고 썼다. 제주 예멘 난민 백서는 출입국 정책 관련 단일 사건에 대한 최초의 기록물인 셈이다. 그는 “제주청이 먼저 치른 난민 시험문제가 있다. 이 책을 기출문제 삼아 예상문제를 뽑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이미 우리 곁에 있고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는 난민. 그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제주 예멘 난민은 우리에게 조금 미리 던져진 질문인지도 모른다.

■시민사회단체 “무지 → 두려움 → 온정 → 수용, 한국 사회 난민 인식의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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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018년 7월 청와대 앞에서 난민법 개정 반대와 조속한 난민심사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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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문제 등 불거졌지만 난민에 대한 ‘국민적 합의’ 형성 계기

난민들 처우와 인식 개선 위해 출입국 관리 제도 고쳐나가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주 예멘 난민 사태는 수많은 논쟁거리를 남긴 채 잊히고 있다. 2018년 8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재임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제주도 불법 난민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무사증 입국·난민신청허가 폐지 및 개헌을 청원합니다’라는 게시글에 대한 답을 내놓으며 난민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박 전 장관은 “국민의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난민제도의 전반적 상황을 꼼꼼하게 재검토해 개선방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허위 난민’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거나 난민 신청자의 국가 정황정보를 수집하고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난민심판원을 신설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법무부 장관의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당시 예멘 난민 사태로 불거진 난민혐오 분위기에 편승해 난민신청 자체를 차단하려는 ‘난민법 개악’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나 활동가들은 제주 예멘 난민 사태가 한국 사회가 난민을 인식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난민에 대한 혐오가 수면 위로 떠오르거나, 찬반 대립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난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2013년 7월 난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이미 난민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가 제주에 찾아온 예멘 난민을 통해 강제됐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이호택 난민들의피난처 대표는 “이전에는 사람들이 난민들에 대해 잘 몰라 의견 표명을 하지 않다가,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겪으면서 모르는 상태에서 오는 두려움이 표출된 것 같다”며 “그 전에는 모르기 때문에 무관심했지만 ‘난민은 불쌍하다’는 온정적인 분위기가 있었다면, 500명이라는 난민이 한 번에 들어오고 세계적으로 난민 관련 이슈가 불거지면서 무지의 상태를 두려움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왕 제주 예멘 난민을 통해 논란이 생겼으니 국민 합의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며 “여론조사를 봐도 난민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성과 반대를 보내는 사람보다는 신중하게 심사하고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결국 합리적인 제도가 형성되면 난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다는 국민적인 의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난민들의 처우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합리적으로 제도를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권 아시아의친구들 대표는 “한창 제주 예멘 난민이 논란됐을 때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난민과 함께하는 연대 집회를 열었는데,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고 했다. 집회장 건너편에선 ‘국민이 먼저다’라며 맞불집회도 열렸지만, 더 많은 시민들이 난민들의 삶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준 것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는 또한 제주 예멘 난민 사태로 난민혐오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이와 함께 이러한 가짜뉴스들을 검증하게 되는 계기도 됐다고 했다. “종교계나 일부 반대자들 사이에서만 유통되던 가짜뉴스들이 난민 이슈가 전 국민에게 공개되면서 ‘이게 진짜일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검증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김 대표는 난민에 대한 출입국 관리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출입국 관리 공무원들이 국경 관리 업무를 하면서 마치 군사분계선을 관리하는 듯 ‘물 샐 틈 없는’ 태도를 보였던 게 사실”이라며 “개방화된 사회가 된 지 수십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관련 제도의 근간이 바뀌지 않았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 세계적 위상에 걸맞게 외국인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포용적인 국가가 되도록 관련 부처가 고민했으면 한다”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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