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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총리와 4개 정당 대표 다 여성, 넷은 30대···이게 핀란드 청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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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마린 총리, 고교 마치자 사민당 청년단 활동

23살에 시의원 도전 27세 첫 당선 28세 의장

30세 국회의원, 올해 재선 뒤 교통통신장관

청년·여성 정치인 지속 수혈해 정당 쇄신

젊은 층과 여성 의제 현실정치 반영 길 뚫어

영국 전·현직 총리 6명 모두 청년정치 출신

20~40대 의회 들어가 40~50대 총리 공통점

다양한 목소리 대변하고 정치 ‘고루화’ 막아

북유럽 핀란드에서 34세로 세계 최연소 총리인 산나 마린이 지난 10일 취임하면서 ‘청년 정치’에 관심이 쏠린다. 사회민주당(사민당) 소속인 마린은 중앙당·녹색연맹·좌파연맹·스웨덴인민당 등 4개 정당과 협상해 연립정권을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총리에 올랐다. 연정 파트너인 4개 정당 대표도 모두 여성이다. 핀란드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국가로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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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 34세로 세계 최연소 행정부 수반이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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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와 4개 정당 대표 모두 여성, 넷은 30대



그뿐이 아니다. 총리와 연정 정당 대표 4명 중 3명은 30대다.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인 카트리쿨무니 중앙당 대표는 32세, 내무부 장관인 마리아 오히살로 녹색연맹 대표는 34세, 교육부 장관인 리 안데르손 좌파연맹 대표는 32세다. 법무부 장관인 안나마야 헨릭손 스웨덴인민당 대표는 55세다. 스웨덴인민당은 550만 핀란드 인구의 5.3%를 차지하는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핀란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공용어로 쓴다. 핀란드는 명실상부하게 양성평등 정치와 더불어 청년 정치를 실현하는 나라로 자리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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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 마린 총리의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해 입각한 정당 대표들이 지난 10일 헬싱키에서 조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교육부 장관인 리 안데르손 좌파연맹 대표, 내무부 장관인 마리아 오히살로 녹색연맹 대표, 마린 총리,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인 카트리 쿨무니 중앙당 대표. 이들은 모두 30대 여성이다. 청년 정치와 양성 평등 정치를 보여준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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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난 총리, 의회 부의장으로



사민당 소속의 전임 안티 린네(57) 총리는 우체국 파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중도당이 사민당 주도의 연정에서 이탈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총리는 그만뒀지만 사민당 당수는 내년까지 계속 맡기로 했고 의회에선 제1 부의장을 맡았다. 의장과 부의장은 의회에서 의사 진행을 맡는다. 높은 자리에서 물러나도 새로운 자리의 서열이나 예우와 무관하게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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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오른쪽)가 지난 10일 헬싱키의 대통령 관저에서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간단하고 소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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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외교는 대통령이 맡는 이원집정제



핀란드는 국방과 외교(유럽정책 제외)는 국민이 직선으로 선출한 임기 6년(연임 가능)의 대통령이 맡고, 행정부 수반은 의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맡는 이원집정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 군 장성과 판사 임명도 맡는다. 핀란드에선 2000년 개헌 이후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 줄어 이원집정제 성격이 희석되고 의원내각제 성격이 강해졌다. 마린 총리는 10일 대통령 관저를 방문해 국민통합당 소속의 사울리 니니스퇴(71) 대통령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총리에 올랐다. 권력을 1인이 독점하게 하지 않는 이원집정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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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신임 장관들이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산나 마린 총리 내각은 19명의 장관 중 12명에 여성이다. 남녀가 나이가 아닌 능력 중심의 인선으로 평가할 수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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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19명 중 12명이 여성, 양성평등 정치



이날 마린 총리는 조각을 발표했는데, 19명의 장관 중 12명(63%)이 여성이다. 이는 핀란드에선 큰 뉴스도 아니다. 이미 2007년 20개 장관 자리 중 12개를 여성이 맡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독립 전 러시아 차르 치하에서 자치하던 1906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같은 해에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출마권을 각각 부여했다. 현재 핀란드 의원 200명 중 47%인 93명이 여성이다. 1990년엔 세계 최초로 국방부 장관을 여성으로 기용했다.

마린은 핀란드에서 여성으로선 3번째 총리에 올랐다. 핀란드는 2007년 안넬리 예텐메키(64, 2003년 4~6월 재임)가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총리에 올랐으며, 마리 키비니에미(51, 2010년 6월~2011년 6월 재임)가 두 번째로 총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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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핀란드를 국빈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만찬에서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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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대통령 할로넨, 32세 교육부 장관



예넨메키 총리가 취임할 당시 대통령도 여성인 타르야 할로넨(76, 2000~2012년 재임)이었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국민 선출 대통령과 의회 선출 총리가 동시에 모두 여성인 나라가 됐다. 할로넨은 핀란드가 러시아에서 독립한 1919년 이후 취임한 12명의 대통령 중 처음이자 지금까지는 유일한 여성이다. 할로넨은 32세의 나이에 좌파동맹 대표를 맡았으며 교육부 장관도 지냈다.

할로넨은 미혼모였으며 자신의 보좌관과 10년간 동거하다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결혼했다. 핀란드에서 이런 일은 사생활로 치부하기 때문에 정치 활동에선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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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벨기에 브뤠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왼쪽)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마크롱은 만 39세이던 2017년 5월 프랑스 대통령에 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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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총리, “나는 무지개 가족 출신”



마린은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마린은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와 어머니의 새로운 동성 파트너로 이뤄진 동성 가족이 양육했다. 그는 이를 자랑스러워했으며 2015년 인터뷰에서 “나는 무지개 가족 출신”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우리 가족은 진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해 내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가족과 삶은 자신의 진보 정치에 고스란히 영향을 끼쳤다. 마린은 2015년 인터뷰에서 “내게 사람들은 언제나 평등하다”며 “이는 (서로 다를 수 있는) 의견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모든 일의 토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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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로 세계 최고령 지도자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왼쪽)와 34세로 최연소 행정부 수반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의 모습.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50년에 이른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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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에 정당 청년단에서 정치 시작



핀란드의 양성평등 정치의 확산과 함께 청년 정치의 정착도 관심을 부른다. 어떻게 이렇게 젊고 활기찬 청년 정치인들을 양성해 정치권에 수혈할 수 있었을까.

마린 총리의 정치 이력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1985년 헬싱키에서 태어나 여러 지방에서 성장하다 2004년 남부 탐페레에서 피르칼라 고교를 졸업하고 탐페레 대학에 들어간 마린은 2006년 사회민주당 청년단 활동을 시작했다. 핀란드는 물론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정당에 청년 조직을 두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이의 관심사를 파악해 정책으로 연결하는 한편 정치적인 관심도 불러올 목적이다. 여기에 더해 청년 정치인을 길러 미래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목적도 있다. 마린은 사민당 청년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2010~2012년 청년단 부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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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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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정치 입문 시도, 27세 시의원으로 시작



마린은 23살이던 2008년 처음으로 정치 입문을 시도했다. 자신이 성장한 탐페레에서 시의원에 도전했지만, 처음엔 고배를 마셨다. 27세이던 2012년 재도전 끝에 시의원에 당선해 풀뿌리 정치에 입문했다. 활발한 활동으로 28세인 2013년 시의회 의장이 됐으며 2014년 사회민주당 제2 부의장을 맡았다.

30세이던 2015년 자신의 풀뿌리 지역인 피르칼라 지역구에서 의원에 당선해 헬싱키의 의회에 진출했다. 올해 재선한 뒤 교통통신 장관 맡아 일하다 린네 총리가 물러나면서 사민당에서 총리 후보로 선출됐다. 21세 정당 입문, 23세 시의원 출마, 27세 시의원 첫 당선, 30세 국회의원 초선에 이어 34세에 장관과 총리를 연이어 맡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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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오른쪽)이 지난 14일 잉글랜드 북부 더럼에서 지지자가 자신과 함께 촬영한 셀피를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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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청년 과감한 수혈로 정당 혁신



34세 마린 총리의 탄생은 청년과 여성 정치인을 과감하게 수혈하는 정당과 정치 풍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핀란드의 정당들은 청년과 여성 의제를 정치에 적극적 반영할 수가 있었다. 청년들 때문에 정당은 건강을 회복하고, 청년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그 핵심은 젊어서 정치에 입문해 산전수전 다 겪으며 국민 위해 일하는 ‘직업으로서 정치인’으로 단련하는 정당의 청년 정치 시스템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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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제1차 세계대전 추념 일요일(종전기념일인 11월 11일에서 가장 가까운 일요일)에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연방 현충일 추념 행사에서 영국의 전직 총리들이 나란히 서있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캐머런, 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 존 메이지가 나란히 섰다. 모두 추념을 상징하는 붉은색 파피를 왼쪽 가슴에 달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1차대전 당시 플랑드르 전선의 참호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던 개양귀비 꽃을 추념의 상징으로 형상화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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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0~40대 초선, 40~50대 총리



이런 청년 정치 양성은 의회민주주의의 본산인 영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영국의 생존 전·현직 총리 6명의 정치 이력을 살펴보면 이런 ‘청년 정치인 양성법’이 보인다. 이들은 대학 등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다 20~40대에 의회 들어가 40~50대에 총리가 되는 공통점이 있다.

현직인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55)은 일간지인 데일리텔레그래프에서 기자로 일하다 37세인 2001년에 초선 의원이 됐으며 런던 시장과 의원을 거쳐 55세 35일이 되던 지난 7월 총리에 올랐다.

직전 총리였던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63)는 41세였던 1997년 초선 의원으로 당선해 59세 286일인 2016년 총리에 올라 지난 7월까지 자리를 지켰다. 같은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53)은 35세인 2001년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해 44세 214일이던 2010년 총리에 올라 2016년까지 재임했다. 이들은 모두 청년 정치의 성과다.



의제설정·토론·협상·합의·연설 훈련, 품위 정치



앞서 재임했던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68)은 32세이던 83년 의회에 진출해 56세 127일이던 2007년 총리에 올라 2010년까지 자리를 유지했다. 같은 노동당 소속으로 그의 전임자인 토니 블레어(66)는 30세이던 83년 초선 의원으로 의회에 들어갔다. 44세 361일이던 1997년 보수당으로부터 정권을 되찾으며 총리에 올라 2007년까지 10년을 재임했다. 30대 정치 입문, 40~50대 총리의 구도다.

이들보다 앞서 재임했던 보수당의 존 메이저(76)는 약관 21세이던 1964년 초선의원으로 의회에 들어갔다. 그는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회계 분야에서 일했으며, 대학은 다니지 않았다. 메이저는 47세 244일이던 1990년 마거릿 대처(1925~2013년, 1979~1990년 재임)에 이어 총리에 올라 1997년까지 재임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청년 시절에 정치에 입문해 정치적인 단련을 받았다. 의회 정치의 핵심인 의제설정·토론·협상·합의·연설에 능숙하다는 평가를 얻는다. 품위의 정치를 가능하게 해주는 덕목들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로 그렇게 혼란스러워도 끝내 정상을 되찾아가는 저력의 원천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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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에서 충격 사고가 발생해 50명이 사망하자 저신다 아던 총리가 현장에 달려가 희생자 가족을 포옹하고 있다. 아던 총리는 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히잡을 쓰고 나타나 희생자들에 대한 공감을 보여줬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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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정치' 뉴질랜드 아던 총리도 청년 지도자



청년 정치인으로 올해 특히 주목받은 인물이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39) 총리다. 아던 총리는 지난 3월 15일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이슬람 사원) 두 곳에서 50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하는 총격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공감의 정치력’을 발휘해 전 세계적으로 조목 받았다. 당시 그는 증오범죄에는 단호하게, 다양한 출신으로 이뤄진 피해자들과 국민에겐 따뜻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아던 총리는 여성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이 쓰는 히잡을 머리에 쓰고 비극의 현장에 나타나 피해자 가족을 포옹하고 그들과 슬픔을 함께했다. 그는 공감과 포용의 자세를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웅변했다. 아던 총리는 범행에 사용된 반자동 소총의 판매를 즉시 금지했다. 총기 범죄에 따른 피해가 그렇게 크면서도 총기 규제에는 소극적인 미국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단호한 지도자의 모습이었다. 아던은 28세였던 2008년 뉴질랜드 노동당의 정당명부제 의원으로 의회에 들어갔으며 37세였던 2017년 3월 지역구 의원에 당선했다. 그해 8월 노동당 대표가 되고 10월 연립정부 구성으로 총리에 올랐다.



진영·저주·꼰대 정치 사라져야 청년 정치



정보통신의 발달로 여론 형성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뉴질랜드의 아던 총리, 핀란드의 마린 총리 같은 청년 정치의 결실이 내년엔 글로벌 사회에서 더욱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서도 청년 정치가 무르익을 수 있을까. 청년 정치를 기대하기 전에 ‘나만 옳다’는 아집이 넘치는 ‘진영 정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증오의 막말을 퍼붓는 ‘저주 정치’, 정치인이 상대 정당과 유권자를 꾸짖고 가르치려는 ‘꼰대 정치’라도 줄어들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래야 청년 정치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비로소 생기지 않을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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