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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준최선의 롱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번아웃되지 않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며 간 보기. 준최선으로 비벼보기.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하는 삶과 대충 사는 삶 사이에서 박쥐처럼 오락가락 하며 어물쩍 살아가는 존버의 삶…. 최선과 한 집에 살면 삶이 고달파지므로, 옆집이나 이웃 정도로 거리 유지를 하고 달걀 꿀 때만 최선이네 집에 찾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보영 『준최선의 롱런』

어린 시절 교훈이나 가훈으로 가장 흔한 게 ‘하면 된다’였다. 한두 교실 걸러 급훈으로도 붙어 있었다. 장난스럽게 패러디하자면 ‘안 되면 되게 하라’다. ‘근면’ ‘성실’ ‘최선을 다하자’가 비슷한 부류다. 최선을 다하는 게 나쁠 것은 없지만 오직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달려가는 삶. 개발시대 성과지상주의의 초상이다. 반골 기질의 박찬욱 감독은 그게 싫어서 “가훈을 ‘아니면 말고’로 지었다”고 했다.

90년대생 젊은 작가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어차피 최선을 다해봤자 결과가 보장되지 않기에 거대한 목표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쫓는, 밀레니얼 세대의 ‘존버(열심히 버티기)’ 라이프다. 물론 작가는 더없이 발랄하다. “글쟁이인 나에게 준최선의 삶은 일기를 쓰는 삶”이라며 일기 같은 글들을 묶어냈다. “일기야말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연습, 준최선을 관성으로 하는 일상, 놀면서 바운스를 유지하는 가벼운 발걸음”이라고도 했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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