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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들에 창고 내주고 먹이도…훈훈한 영등포 쪽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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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각자 10~20여마리 돌봐

“길고양이 수명 2~3년에 불과

이 동네 똘망이는 10살이 넘어”

동물단체들, 겨울집 추가 설치

경향신문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의 길고양이 ‘똘망이’의 모습. 동물구조119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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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 사는 김모씨 부부는 길고양이 20여마리를 보살피고 있다. 특히 2년 전 노부부는 지쳐 쓰러진 만삭의 어미 고양이를 발견하고, 출산할 때까지 연탄창고 한쪽을 내줬다. 김씨 부부는 사료를 주고 빈 상자에 흙을 담아 화장실도 만들어주며 보살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새끼 고양이 두 마리는 숨졌다. 부부는 남은 어미와 새끼마저 잘못될까봐 아예 한평 남짓한 쪽방에 고양이들을 들여 자식처럼 보살피고 있다.

5일 동물보호단체 동물구조119에 따르면 영등포 쪽방촌에는 김씨 부부처럼 형편은 어렵지만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집을 마련해주는 이들이 여럿 살고 있다.

70대 이모씨는 약 10년 전부터 길고양이 ‘똘망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가까운 거리도 휠체어가 없으면 가기 힘들면서도 그는 매일 거르지 않고 똘망이를 챙긴다. 지난달 똘망이를 구조해 치료한 동물구조119 임영기 대표는 “이씨 할아버지가 극진히 보살핀 덕분에 똘망이는 열살이 되도록 살아 있다”고 소개했다. 보통 길고양이 수명이 2~3년 정도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똘망이는 매우 장수하는 셈이다.

쪽방촌 골목 초입에 사는 최모씨는 노숙인들에게 학대받던 길고양이들을 구해내 보살피고 있다. 하나둘씩 돌보기 시작한 길고양이가 이제 10여마리나 됐다. 이 중에는 노숙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귀가 잘리는 등 상처를 입은 고양이들도 있다. 도배도 제대로 안돼 있고 곰팡이가 가득한 허름한 집이지만 이 고양이들에게 최씨의 집은 안전하게 휴식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 쪽방촌 사람들이 자기 먹을 걸 아껴 길고양이들에게 주는 것은 길고양이들의 삶이 자신들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길고양이들은 전반적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쪽방촌의 길고양이들은 특히 상태가 심각한 개체들이 많은 편이다. 이씨가 보살피고 있는 똘망이도 지난달 구조될 당시 구내염이 매우 심해 먹이를 삼키기도 힘든 상태였다. 구내염은 길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질병이다. 입이 너무 아파 사료를 먹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동네고양이서울연대는 똘망이처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길고양이들을 구조해 치료한 뒤 중성화해 다시 쪽방촌에 풀어주고 있다.

동물구조119, 동물을위한행동, 동네고양이서울연대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김씨 부부처럼 길고양이들을 보살피는 영등포 쪽방촌 사람들과 길고양이들을 돕기 위해 5일 오후 쪽방촌에 길고양이 겨울집 10개를 설치했다. 길고양이 겨울집은 길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해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상자다. 이번에 설치한 겨울집은 봉사단체인 윈터캣프로젝트가 지원했다. 임 대표는 “어렵게 사시는 쪽방촌 분들이 더 힘들게 겨울을 나야 할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 마음에 감동해 작은 선물을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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