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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겨울이면 청천강 하구 찾는…북한 첫 야생동물 축제의 주인공 ‘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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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 철새보호구역 ‘개리 축제’

경향신문

더그 왓킨스 동아시아대양주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 대표가 지난달 12일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의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열린 세계 철새의날 기념 개리축제 개회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동아시아대양주이동경로파트너십(EA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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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새의날’ 기념해 열려

국제기구·해외 사절단 등 참석

“북한의 첫 시민의식 증진 행사”

관계 악화로 남한은 참석 못해


세계 9만마리 남짓 ‘멸종위기종’

람사르습지 등재된 문덕으로

해마다 2만마리 이상 날아와

국내선 임진강 등 ‘최대 월동지’


지난달 13일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북한 사상 처음으로 야생동물을 주제로 한 국제행사가 열렸다. 바로 청천강 하구에 약 2만마리가 찾아오는 국제적 멸종위기 조류인 개리를 주제로 한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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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의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열린 철새 조사 국제 워크숍 모습. 동아시아대양주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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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열린 세계 철새의 날 기념 개리 축제에 참석한 북한 주재 대사관 직원들의 가족과 인근 지역 어린이들이 생태교육 차원의 게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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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 철새보호구에서 개리 축제를 연 것은 전 세계에 약 6만~9만마리만 남았는데 약 2만마리가 이곳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개리 축제 중 국제기구와 해외 사절단, 북한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실시된 조류관찰에서 청천강 하구를 날아다니는 수천마리 개리가 장관을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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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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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길이 81~94㎝가량인 개리는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겨울 철새다. 러시아 극동지역, 중국 동북부, 중국 헤이룽장성, 몽골 등에서 번식하며 중국 양쯔강, 대만, 일본 등에서 월동한다. 국내에서는 임진강과 한강 하류지역이 최대 월동지로 꼽히며 낙동강 하구, 금강 하구, 영산강 유역, 주남저수지 등에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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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리’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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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개리는 주로 갯벌, 강 하구 등에서 관찰되며 수생식물의 잎이나 줄기 및 뿌리, 벼, 보리 등을 먹이로 삼는다. 하굿둑과 갯벌 간척, 하천 준설 등으로 인해 먹이가 줄어든 탓에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개리를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 가운데도 취약종(VU)으로 분류한다. 적색목록은 멸종이 우려되는 야생동물을 9단계로 나눈 것으로, VU는 ‘야생에서 높은 절멸 위기에 직면한 종’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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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열린 개리 축제에 참석한 국제기구 대표, 북한 연구자, 주민 등이 청천강 하구에서 멸종위기 철새인 개리를 관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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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열린 개리 축제에 참가한 국제기구 및 북한 관계자들이 청천강 하구에서 조류 조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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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초청으로 개리 축제에 참석한 동아시아·대양주철새이동경로파트너십(EAAFP) 사무국의 비비안 푸 커뮤니케이션담당관은 지난 12일 전남 신안에서 열린 신안국제철새심포지엄에서 “10월13일 ‘세계 철새의날’을 기념해 열린 개리 축제는 야생동물과 보전을 주제로 북한이 주최한 첫 번째 시민인식 증진 행사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덕 철새보호구를 이용하는 개리 개체 수와 그 중간기착지로서의 중요성 때문에 (북한이) 개리 축제를 위한 상징적인 장소로 선정한 것”이라며 “해당 지역 주민들은 논을 주로 이용하는 개리를 익숙하게 여기고 있었다”고 전했다. EAAFP 사무국에 따르면 이 행사에는 유엔, 러시아, 몽골, 시리아 대사관 대표단, 북측 관계자, 철새보호구의 서식지 관리자들 등 160여명과 문덕 철새보호구 인근 지역 학생과 교사 30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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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의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열린 세계 철새의 날 기념 개리 축제에 참석한 국제기구 대표단과 북한 관계자들이 행사장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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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국제철새심포지엄은 국내에서 기초지자체가 개최하는 유일한 철새 관련 국제학술행사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이 심포지엄은 신안군과 환경부, 해양수산부가 주최하고, 한국의갯벌 세계유산등재추진단과 EAAFP, 생태지평연구소 등이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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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 철새보호구는 함경북도 두만강 하구의 라선 철새보호구와 함께 지난해 5월 북한이 람사르협약에 가입하면서 처음 람사르 습지로 등재된 곳이다. 람사르협약 사무국은 문덕 철새보호구를 람사르 습지로 등재하면서 멸종위기 조류인 개리, 두루미, 흑두루미 등의 보호를 위해 국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라고 평가했다.

푸 담당관이 속한 EAAFP는 이동성 물새들의 서식지 보존을 목적으로 한 국제기구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란 세계 조류학자들이 구분한 지구상의 철새 이동경로 9개 중 한국이 속한 이동경로를 의미한다. 지구 남반구에서 이 경로를 따라 북반구로 올라온 철새들은 서해 갯벌 등에서 영양을 보충하고, 번식지인 알래스카·시베리아 등지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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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북한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의 문덕 철새보호구에서 열린 개리 축제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생태교육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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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국제기구와 북한 주재 대사관 직원 및 가족 등을 초청해 개리 축제를 연 것은 최근 북한이 자연생태분야에서 국제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는 것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해 람사르협약에 가입하고, 금강산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받은 것을 계기로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람사르 습지 등재 후 북한 내에서 철새 등 조사를 위한 국제학술교류도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는데 바로 현실화한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국제 학술교류에 적극 나서는 상황에서도 남한은 배제돼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개리 축제에 주변국 중 유일하게 참석하지 못한 것이 남한이었고, 또 남한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도 북한은 참석하지 못했다. 신안국제철새심포지엄의 경우도 신안군은 EAAFP를 통해 북한 측에 초대장을 보냈지만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결국 북한의 방문은 무산됐다. 대신 자국 내 습지를 소개하는 동영상과 파워포인트 자료만을 보내왔다.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자연생태분야의 연구, 협력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푸 담당관은 “개리 축제 후 북한 관계자와 앞으로 이번과 같은 협업을 확대하자는 대화를 나눴고, 앞으로의 협력 계획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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