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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이념에 복무한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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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구소련 과학자 트로핌 리센코는 이념에 복무한 과학자의 말로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1935년 크렘린 궁에서 연설하는 리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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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가치 중립ㆍ정치 중립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구소련 농업생물학자 트로핌 리센코(Trofim D. Lysenko,1898.9.29~1976.11.20)가 있다. 그는 실험과학이 어떻게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며, 과학적 사실이 데이터가 아닌 권력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지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리센코는 우크라이나 볼타바(Poltava)라는 곳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등록금 낼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녔고, 집안 일을 거드느라 13세 무렵까지 글도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영민했던 그는 혁명 후 어렵사리 볼타바 하급 농업학교와 키예프 농업전문학교(현 우크라이나 국립생명환경과학대학)를 거쳐 농업 육종 연구자가 됐고, 겨울에 파종하는 밀 종자를 춘화 처리를 통해 개량, 봄에도 파종해 수확할 수 있게 함으로써 30대 초반 이미 구소련의 일류 농화학자 바빌로프 등의 인정을 받는 학자가 됐다.

선을 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무렵부터였다. 그는 춘화 처리한 겨울밀의 2세대 종자는 별도로 춘화 처리를 하지 않아도 봄 파종용 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즉 유전자 변형 없이, 환경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거였다. 그건 소비에트 혁명 이념, 즉 교육과 노동을 통한 공산주의형 인간 개조 이데올로기의 과학 버전이었다. 유전과학 진영의 비판과 리센코 자신의 잇단 실험 실패에도 불구, 스탈린은 1948년 10월 그의 획득형질 이론을 당 공식 이론으로, 소련 농업정책의 근간으로 채택했다.

그의 이론에 반대하는 과학자는 이제 당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과학자였다. 가히 한 세대, 수천 명의 소비에트 유전ㆍ생명과학자들이 숙청당해 일자리를 잃고, 가정을 잃고, 바빌로프를 포함한 다수는 노동수용소에서 목숨마저 잃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이 기아에 희생됐다. 소련과학아카데미 유전학 연구소장이던 그는 스탈린 사후 영향력을 잃고 65년 실각했다. 과학저술가 사이먼 잉스(Simon Ings)는 그를 권력의 도구였다고 썼다. “그는 권력의 장난감으로서의 역할을 즐겼고, 부서진 뒤 내버려졌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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