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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일본은 핵연료 재처리, 한국은 금지… 46년째 꽁꽁 묶인 원자력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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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역청구서 내자] [2] 한국 홀대하는 미국의 원자력 협정

방위비 비슷하게 내는데… 美, 일본만 규제 풀고 한국 요구는 외면

핵폐기물 2년후 포화, 재처리땐 부피 20분의 1·독성 1000분의 1로

美 허락없인 우라늄 농축도 불가… "일본 수준으로 협정 개정 필요"

미군 2만8500명이 주둔 중인 한국은 올해 방위비 분담금으로 1조389억원을 썼고, 미군 5만2000명이 주둔 중인 일본은 2조600억원가량을 냈다. 한·일의 경제력 격차를 감안하면 한국의 분담 규모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안보 측면에서 한·일에 대한 미국의 대접은 완전히 딴판이다.

대표적 사례를 미국이 한·일과 맺은 원자력협정에서 찾을 수 있다. 두 협정을 비교해 보면 핵 주권과 직결된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일방적인 차별을 당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하는 미국을 상대로 '일본 수준으로의 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日엔 재처리 프리패스, 韓엔 전면 금지

원자력 발전에 사용되는 우라늄 핵연료는 4년 정도 사용하면 교체해야 하며, 이때 높은 열과 방사능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 현재 한국은 원전마다 마련된 임시저장시설에서 열을 식히며 이를 보관 중인데, 2021년부터 차례로 포화상태가 된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자료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부피는 20분의 1, 발열량은 100분의 1, 방사성 독성은 1000분의 1로 줄어든다. 이 과정에서 얻은 저순도 플루토늄도 원자력 발전의 연료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플루토늄이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재처리 허용 요구를 거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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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도 재처리는 인정받지 못했고, 핵무기로 전용이 불가능한 재활용 기술(파이로프로세싱)의 연구만 일부 허용받았다. 당시 협정을 통해 해외 위탁 재처리를 허용받았지만, 사용후핵연료를 영국·프랑스까지 싣고 갔다가 플루토늄을 제외한 나머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다시 한국에 반입해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반면 일본은 30년 전부터 미국의 재처리 금지 방침에서 예외를 인정받아 비핵보유국 중 유일하게 플루토늄을 쌓아놓고 있다. 일본은 1968년에 체결된 미·일 원자력 협정을 통해 일본 내 시설에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권리를 얻었다. 1988년 개정된 협정에서는 일본 내에 재처리시설, 플루토늄 전환 시설, 플루토늄 핵연료 제작 공장 등을 두고 그곳에 플루토늄을 보관할 수 있는 '포괄적 사전 동의'를 얻었다. 일본은 영국·프랑스 등에서 위탁 재처리한 뒤 나온 플루토늄을 재반입해서 현재 약 46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 짓고 있는 재처리 시설이 완성되는 2021년부터는 매년 8t의 플루토늄을 자체 생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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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농축우라늄도 한국은 '원칙적 허용'

프랑스형 원자력 잠수함의 연료로 쓸 수 있는 저농축우라늄과 관련해서도 한·미 원자력 협정과 미·일 원자력 협정의 수준은 판이하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 협정에서 미국은 우라늄의 20% 미만 저농축을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하지만 '고위급 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서면 합의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어, 20% 미만 저농축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일본이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에 의해 우라늄의 20% 미만 농축을 전면 허용받고, '당사자 합의 시' 20% 이상의 고농축도 가능하도록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와 관련,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보관이나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서 일본 수준으로 원자력 협정을 업그레이드하자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추후 교섭 과정에서 이미 독자성을 갖춘 우리 원전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2015년 개정된 협정에서 한국이 원전을 수출할 때 대상국에 대해 미국의 포괄적 동의만 받으면 되도록 규정했지만, 언제든 미국이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 실제 작년 9월 한국전력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단독으로 원자로 수출을 시도하자, 미 정부는 "미국의 원전 기술이 포함돼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황일순 울산과학기술원 석좌교수는 "한국이 이제 완벽히 독자적 원전 기술을 가진 나라라는 점만 미국이 인정해줘도 원전 수출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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