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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주 52시간제 유예]연장근로 허용 사유에 ‘업무량 급증’ 포함…노동계 “남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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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9월엔 “유예 고려 안 해”…경영계 요구에 입장 바꿔

2월부터 논의된 근로자대표 제도 개선 문제도 대책 못 내놔

노동계 “노동시간 단축 포기” 경영계 “시행 1년 이상 늦춰야”



경향신문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정부세종청사 노동부 브리핑실에서 ‘주 52시간제 입법 관련 정부 보완대책’ 발표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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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을 사실상 연기하고, 기업의 특별연장근로 확대 민원은 수용한 정부 방침에 노동계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 모두에 충분한 준비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재의 장시간 노동체계 유지를 해법으로 내놨다는 것이다.

18일 정부가 ‘주 52시간제 입법 관련 보완대책’을 내놓은 이유는 탄력근로제 개정 논의가 여야의 입장차로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행 제도만으로는 도저히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현실”이라며 내년 1월로 다가온 중소기업(50~299인)의 주 52시간제 적용을 사실상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유예 안 한다더니 말 바꾼 정부

주 52시간제는 지난해 7월 대기업(300인 이상) 시행 단계에서도 최장 9개월까지 유예된 바 있다. 법 시행 때부터 이미 1년6개월의 시행 유예를 받은 중소기업은 이날 발표로 추가 유예기간을 부여받게 됐다.

제도 시행의 반복되는 유예에 노동계는 정부 정책 의지를 문제 삼으며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보다는 ‘보완’이라는 이름으로 애매모호한 시그널을 기업에 보내왔으니 어떤 기업이 (주 52시간제 도입에) 최선을 다하겠는가”라고 밝혔다.

제도 유예는 그간의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 지난 9월 노동부는 중소기업의 노동시간 단축 현장안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준비가 완료된 기업이 61.0%로 가장 많았고, ‘준비 중’이라는 기업도 31.8%였다. ‘준비를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2%에 그쳤다. 당시 브리핑에서 노동부 근로감독정책단장은 탄력근로제의 국회 입법을 전제로 “시행유예 자체가 52시간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문제점을 뒤로 미루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에 정부는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 악화에 맞물린 경영계의 요구가 이어지고,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정부의 입장도 변화했다. 당초 정부는 100인 이상 기업에는 최장 1년, 50~99인 기업에는 최장 1년6개월의 계도기간 부여를 검토했다가 관계부처회의를 거치며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기업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현장에 안착되도록 하는 게 주된 목적이기에 충분히 준비할 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영계는 대체로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년 이상 시행유예가 아닌 점은 다소 아쉽지만 정부 대책은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라 판단된다”며 “특별인가연장근로를 보완하기로 한 것도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보완책으로는 부족하며 시행을 1년 이상 늦춰야 한다”고 밝혔다.

■ 특별연장근로 제한도 무색해져

최장 주 64시간 근무를 가능케 하는 특별연장근로의 인가 요건에 기업의 ‘경영상 사유’가 포함된 것을 두고도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만 한정해 연장노동을 가능케 했던 제도가 이번 조치를 통해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법안 소위를 열고 ‘소재·부품·장비산업 특별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특별연장근로제를 허용하는 특례조항 삽입 문제를 논의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들 산업에서 전략품목을 생산하거나 연구·개발하는 기업은 특별연장근로를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게 된다. 특혜조항 삽입에는 일부 여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은 “이제 특별연장근로 제도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될 경우 기업은 1개월 단위로 이를 신청, 최장 3개월간 주 평균 64시간 노동을 시킬 수 있다. 정부가 정한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12주 동안 1주 평균 60시간 초과)보다도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셈이다. 노동자가 연장근로를 실질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는 지난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탄력근로제 노사 합의 과정에서 제시된 과제이기도 하다.

이 장관은 “입법 과정에서 건강권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제도 개선이 이뤄진다면 근로자 대표와 관련해서 과거보다 보완된 제도가 운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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