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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폴리카르파 살라바리에타(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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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콜롬비아 1만페소 지폐 모델인, 콜롬비아 독립의 상징적, 전설적 투사 폴리카르파 살라바리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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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과 별도로 11월 14일을 ‘콜롬비아 여성의 날’로 기린다. 1817년 이날, 콜롬비아 독립운동 영웅 폴리카르파 살라바리에타(Policarpa Salavarrieta)가 스페인 왕당파에 의해 처형당했고, 1967년 콜롬비아 의회가 그날을 국가 공식 기념일로 제정했다.

살라바리에타의 사적인 정보는 거의 확인된 게 없다. 고향도, 생일도, 본명도 공식 문서로 남은 게 없다. 과두아스(Guaduas)에서 1790~96년 사이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혁명운동가들 사이에선 ‘라 폴라(La Pola)’라는, 암호 같은 애칭으로 주로 불렸다. 표면적인 직업은 마을을 돌며 바느질 일감을 받아 옷을 짓고 수선하는 재봉사였고, 공립학교에서 교사로도 일했다는 설이 있다.

1810년 무렵부터 고향서 독립운동에 가담, 치안 당국의 수배를 받게 되자 1817년 신분증을 위조해 수도 보고타로 이주, 혁명군을 위해 본격적인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 당시는 ‘남미의 해방자’라 불리는 베네수엘라 출신 혁명가 볼리바르 등의 무장 투쟁이 중남미 전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때였다.

살라바리에타는 부유층 왕당파들의 집들을 방문, 일감 주문을 받고 더러는 부엌이나 응접실에서 주인 가족 틈에 섞여 바느질도 하면서 군사 정보나 왕당파의 동향, 누가 혁명파로 의심받는지 등 정보를 수집해 혁명군 지도부에 전달했고, 청년단원들을 모집하는 데도 가담했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의심을 산 적 없는 탁월한 스파이였던 그는 혁명군 동료의 자백으로 정체가 탄로나 동지 6명과 함께 체포돼 반역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1월 14일 아침 고문과 구타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처형장에 끌려가며 그는 간수가 건넨 포도주를 뿌리치며 “적이 주는 건 물 한 잔도 받을 수 없다”고 외쳤고, 처형대에서도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으며, 자신의 차례가 되자 등을 돌려 자신에게 총을 겨눈 소총수들을 응시하며 총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한 마디로 그는 혁명군의 귀감이었고, 독립 후 군사독재 정부들도 그에게 기대 정통성을 구걸하곤 했다.

살라바리에타의 사진이 있을 리 없다. 그의 가상의 얼굴은 독립 애국의 상징으로, 여러 차례 콜롬비아의 지폐와 우표를 장식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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