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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가수 이향수, 쇠는 담금질할수록 더 단단해진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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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가수 이향수 인터뷰 / 사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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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쇠는 담금질을 하면 할수록 더 단단해진다.

가수 이향수(51)의 인생은 지난한 담금질을 반복하는 인고의 역사였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파란만장한 고난의 연속. 그 과정을 지독히 견디다 보니 비로소 단단한 '철의 남자' 이향수만 남게 됐다.

이향수의 시작은 복서였다. 초등학생 때 동네 형에게 선물받은 복싱 글러브가 단초였다. 바닥에 링을 그려놓고 재미 삼아 스파링을 하던 그는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복싱을 배웠다. 복싱 상비군 출신인 학교 선생님 눈에 띈 것이 계기였다. 정식으로 복싱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이향수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선생님은 그에게 체육관을 소개해줬고, 학교에 복싱부를 만들었다.

그가 다닌 중학교는 실제 복싱으로 유명해졌다. 소년체전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정작 학교의 역사를 바꾼 이향수는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코피 지혈이 안 되는 치명적인 병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세계 챔피언을 꿈꿨으나 그의 꿈은 허무하게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너무 일찍 꺾여 가슴에 한이 맺힌 탓에 이향수는 어둠의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방황하던 그를 끌어낸 건 세계 챔피언 故 최요삼이었다. 최요삼을 만난 그는 다시 복싱의 길로 돌아오게 됐다.

이향수는 "요삼이가 저에게 '형님은 나이를 먹었지만 천재성이 있어서 꼭 복싱을 해야 한다'고 했다. 머뭇머뭇했는데 요삼이가 세상을 떠나게 된 거다. 너무 사랑하는 동생이었고 또 요삼이 추모제 대회가 있어서 추모제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복싱을 다시 시작했다. 꼭 챔피언이 되겠다 결심했다. 요삼이가 살아생전에 나한테 주문했던 것들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42세의 나이에 전국 복싱대회에서 두 체급 챔피언에 올랐다"고 털어놨다.

30대가 지나 웅담을 먹고 지혈이 안 되던 병을 고치면서 복싱을 품에 안은 이향수는 또 다른 꿈, 가수에도 도전하게 됐다. 이번에는 가수 추가열이 원동력이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해 수년 전부터 복지관에서 노래 봉사를 하던 그를 추가열이 돕기 시작했고, 그를 위한 곡을 만들어 녹음까지 제안했다고.

이향수는 "가열이 형님이 내 사연으로 노래를 만들어주셨다. '녹음 한 번 해볼까' 하시는데 제가 어둠의 세계에 살지 않았나. 자신감이 없었다. 부끄럽지 않게 살았지만 우리 세계에선 음악을 '딴따라'라고 했기 때문에 뒤에서 들려올 말들이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향수는 끝없이 자신을 응원해주는 복지관 어르신들에 힘을 얻었다. 그는 "어르신들이 '너 아까워. 빨리 서울 가야 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라며 용기를 많이 주셨다. 노래를 특별히 잘한다기보다도 어르신들이 제 삶을 좋아해주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도 가지게 됐다. 나에게는 그 어르신들이 팬이었다. 남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나를 위한 봉사였더라"고 되짚었다.

그렇게 이향수는 2017년 11월, 추가열의 손에 이끌려 녹음을 하게 됐다. 그 곡이 지난해 2월 발매된'단심가'다. 피나는 연습에 추가열이란 훌륭한 스승까지 만나면서 이향수는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가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향수는 "저는 멋을 부리는 가수는 아니다. 꺾거나 바이브레이션을 휘황찬란하게 하지 않고 정직하게 부른다. 가수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하루에 10개의 가르침을 받아도 한꺼번에 다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가열이 형이 참 지혜롭게 가르쳐주신다"고 했다.

특히 이향수는 추가열과 감성이 잘 맞는다고 자부했다. 그는 "가열이 형을 너무 좋아한다. 노래가 다 아름답지 않나"면서 "전 항상 상대를 존중하려고 한다. 좀 가까워졌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을 좋아한다면 내가 그 사람을 따라가려고 해야 한다. 실제 가열이 형과 성향도 비슷하다. 제가 강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히 여성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웃었다.

이어 그는 "가열이 형이 저를 소개해준 지인에게 '너에게 가장 감사한 일은 향수를 소개해준 일이야'라고 했다더라. 참 감사했다"고 밝히며 추가열에게 남다른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향수는 인터뷰 내내 복싱, 노래, 봉사란 단어를 자주 발음했다. 복싱, 노래, 봉사가 그의 인생을 이끌어온 키워드였던 셈. 그는 이 세 가지에 대해 각각 정의하며 빽빽한 인생관을 녹여냈다.

그는 먼저 복싱에 대해 "무술은 '도'라고도 얘기하지 않나. 저는 무술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진정한 무도인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 나만의 무기를 장착하고 이 무기를 나쁜데 쓰지 않고 아름다운 곳에 쓰면 당당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복싱은 가장 아름다운 운동이고 나를 멋지게 만드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땀을 흘린 만큼 성과가 있는 정의로운 스포츠다. 몸을 못 쓰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복싱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래 역시 '인생 마지막까지 함께 가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 이향수는 "팬들이 주는 사랑의 달콤함을 알았다. 그분들이 즐거워하는 게 나의 행복이다. 이걸 느꼈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감을 가지고 노래를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나이가 먹어도 무리 없이 할 수 있고 또 가지고 있는 재능이 있는데 굳이 썩힐 필요는 없지 않나. 노래도 제 인생 마지막까지 간다"고 설명했다.

봉사에도 열중하는 그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에 우물을 파며 뿌듯한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향수는 "봉사도 마찬가지로 남이 행복한 것이 내가 행복한 것"이라면서 "남에게 행복만 주고 나는 손해 본 느낌이 들면 봉사가 아니다. 봉사는 사실은 나를 위한 거다. 봉사는 노후에 적금 타먹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행복을 느끼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 그걸 간파 못하면 좌초되고 무너진다. 내 이익을 알고 있는데 안 하면 바보 아닌가. 난 이미 느꼈다. 능력이 닿는 한은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어 "노래나 복싱을 통해서 얻어지는 수익이 있다면 봉사를 통해서 다 나누고 싶다. 누가 '이향수 씨 호주머니는 마를 날이 없을 겁니다. 우물을 많이 파셨잖아요. 우물이 돈입니다'라고 하더라. 이 말이 내 마음속에 와닿았다. 나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깊이 헤아린 사람은 그렇게도 표현하는구나' 너무 행복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 생각했다. 저 같은 사람이 한 명만 더 생겨도 세상을 떠나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봉사 역시 영원히 저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향수는 세상에 끼칠 선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그는 "겪어보면 안다. 시간이 갈수록 묵은 김치처럼 묵은 사람이다. 언제든 찾아오라"며 바른 삶에 대한 나름의 성찰을 꺼내놨다.

"세상의 빛이 되고 싶습니다. 걸음걸이 하나도 바르게 걷고 싶습니다. 음식 하나라도 투정 부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음식에 투정 부리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투정 부립니다. 어른으로서, 자식을 가진 아버지로서 참된 교육은 집안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 내 행동 하나가 자식과 주변에 전파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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