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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휠체어 탄 어머니의 눈으로 세상 보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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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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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장애인이 됩니다. 제 어머니는 3년을 장애인으로 살았고, 어떤 분은 30년을, 어떤 사람은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를 마치고 은퇴해 청각장애인 인권을 위해 발로 뛰고 있는 오준 사랑의 달팽이 부회장(64)이 자신이 하는 일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가 급성 파킨슨병으로 휠체어 신세를 지다 2001년 돌아가신 걸 계기로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가졌다.

"어머니는 58세에 운전을 처음 배워 70세까지 조그만 차를 몰고 다녔을 정도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분이었어요. 그러던 분이 하루아침에 휠체어를 타게 돼 평소에 가고 싶은 곳도 못 가고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계시니 제 가슴이 미어졌죠." 오 부회장은 주말마다 어머니를 돌보며 처음으로 휠체어를 탄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고 했다. 식당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 항상 물어봐야 했고, 식당 직원들이 '된다'고 했지만 낭패를 본 적도 많았다.

그는 유엔 대사로 일하며 2015년부터 2년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당사국회의 의장직을 맡으며 장애인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 권익 증진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국제 규범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의장을 맡은 사람은 오 부회장이 유일하다. 당시 그는 이 독특한 경험을 살려 퇴직 후 장애인을 위해 활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그에게 가장 먼저 손을 뻗은 게 청각장애전문 복지단체인 사랑의 달팽이다. 그는 2017년 5월 사랑의 달팽이 부회장으로 합류해 2년 반째 청각장애인 인권을 위해 뛰고 있다. 사랑의 달팽이는 저소득층 청각장애인에게 인공 와우(달팽이관) 수술비와 언어 재활 치료비를 지원하고, 이들의 사회 적응을 위해 클라리넷앙상블을 운영하며 매년 정기연주회를 연다. 배우 최불암 씨 아내인 배우 김민자 씨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청각장애는 전체 장애의 13%가량으로 선천적인 경우가 많다"며 "어렸을 때 빨리 발견하고 어떤 수단으로라도 의사소통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과거에는 아이가 말을 배우기 전까지 장애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력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면 잘 보이듯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적기에 인공 와우 수술을 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며 "사랑의 달팽이는 경제적 여건으로 수술이 어려운 사람에게 1인당 1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970명의 청각장애인이 지원을 받아 세상의 소리를 듣게 됐고, 내년 초에는 1000명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단체의 궁극적인 목표다.

2003년부터 클라리넷앙상블을 운영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인공 와우 수술을 통해 의사소통뿐 아니라 연주까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30여 명의 청각장애 유소년으로 구성된 클라리넷앙상블은 지난 8일 '타파'를 주제로 15회 정기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오 부회장은 "청력에 상당한 제한이 있는데도 일반 전형으로 음대에 간 친구도 있다"며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오 부회장은 취임 후 멘토링 프로젝트 '소꿈놀이' 사업을 시작했다.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사람이 후배들 고충을 가장 잘 안다는 데 착안해 이들이 서로 고민을 나누고 조언해줄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을 펼치거나 자문위원회를 꾸려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도 한다. 그는 "과거 사랑의 달팽이가 자선단체 성격이 강했다면 포괄적인 장애인 지원 단체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구성원이 모두 동의해 활동의 폭을 넓히고 다양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접근에 대해 오 부회장은 "장애 문제에 있어서는 장애인권리협약이 권하는 대로 권리 중심 접근, 사회적 접근을 해야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복지 중심 접근에 치중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살 때 정부가 비용을 절반 지원해주지만 정작 휠체어를 타고 갈 곳이 없다"며 "권리 중심 사회적 접근을 하지 않고 복지 중심 접근을 하면서 이 같은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 복지에 있어서 많은 진전을 이뤘을지 몰라도 장애인권리협약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사회가 좀 더 과감하게 장애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가 보장되고 이들의 권리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권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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