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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아빠는 농구 대통령 '허재'… 나는 '노력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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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3년차에 활짝 핀 KT 허훈

작은 키 극복하려 근육 키우고 매일 800개 넘게 슛 연습

경기당 16.2점… 국내 선수 1위… 한 경기 3점슛 9방 'KBL 타이'

1라운드 최우수 선수로 뽑혀 "꾸준하게 성적 내는 선수될 것"

'허웅은 노력, 허훈은 재능.'

허재 전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두 아들을 두고 자주 나오는 말이다. 반쯤 맞고 반쯤 틀렸다. 남자 프로농구 부산 KT 허훈(24)은 "농구 감각을 타고난 건 인정하지만, 내 성적은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된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한다.

조선일보

어깨 근육도 부전자전 - 홈경기 시작을 몇 시간 앞둔 어두운 코트에서 드리블하는 허훈. 그의 어깨 근육을 두고 '허재의 선수 시절이 떠오른다'고 하는 팬이 많다. 허훈은 웨이트 트레이닝 이야기를 하며 "열심히 하긴 하는데, 실은 남들보다 근육이 좀 빨리 붙는 편이다. 아버지가 좋은 근육도 물려주신 게 아닐까"라며 은근히 아버지 자랑을 했다. /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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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3년 차, 'KT의 미래' 허훈은 올 시즌 팀의 기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단점으로 지적되던 슛 정확도가 크게 올라 국내 선수 중 득점 수위를 달리고, 1라운드 MVP(최우수선수)로도 선정됐다.

지난 6일 부산 사직실내체육관 코트에서 그를 만났다. 생글생글 웃는 그에게 구단 직원이 '사인하라'며 부산 지도가 그려진 티셔츠 몇 장을 줬다. "와, 이게 뭐예요?" 팬에게 나눠줄 굿즈라는 직원의 설명에 이것저것 묻더니 "나도 한 장만 달라"고 능청스레 농담을 건넸다.

개구쟁이 같은 인상, 유별난 붙임성. 이와 어울리게 그는 '즐길 땐 즐기는' 성격이다. 스스로도 부인하지 않는다. 연세대 시절을 두고 "솔직히 말하면 농구보다 대학 생활을 많이 즐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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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았어요. 지금에 비하면 운동을 별로 안 했거든요. 수업도 들어가고, (운동선수가 아닌) 친구들도 사귀고. 후회는 없어요. 대학 생활은 그때만 즐길 수 있는 거잖아요."

마음을 다잡은 건 프로의 벽을 실감하면서다. 그의 데뷔 시즌 성적은 나쁘진 않았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대표팀에서의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아버지가 형 허웅(원주 DB)과 자신을 선발했을 때부터 '혈연 논란'이 일었고, 그는 아시안게임 8강·4강전에서 단 1초도 뛰지 못했다. 당시를 떠올리는 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버지 사퇴하고 나선 '아, 난 이제 정말 끝이구나. 대표팀에선 다시는 못 뛰겠구나' 했어요. 그래도 그걸 계기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좀 단단해졌다고 해야 하나? 반성도 많이 했고요."

돌파구는 결국 끊임없는 훈련에서 찾았다. 근육을 단련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농구선수치고 작은 키(180㎝)지만 체격에서 장신 선수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는 "프로에 와서 부딪쳐보고 필요성을 느꼈다"며 "코어 운동은 시합이 많은 주에도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농구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 다시 뽑혔을 때에는 슛 연습에 몰두했다. 훈련 시작 30~40분 전부터 공을 던졌다. 허훈은 "들어간 것만 개수를 세는 타입인데, 보통 하루에 800개씩 넣었고 1000개를 넘기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20일 DB전에서 3점슛을 9개 연속 성공시키며 KBL 타이기록을 세웠다.

냉정하게 보면 갈 길이 아직 멀다. 성적이 오른 배경에 규정 변경으로 줄어든 외국인 비중이 있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다. 6일 창원 LG전에선 상대의 집중 견제에 컨디션 난조까지 겹쳐 2득점에 그쳤다. 팀 공격의 시작점인 허훈이 묶이자 3쿼터부터 KT가 급격히 밀렸다. 그는 "'반짝'하고 끝나는 선수가 얼마나 많나. 기복 없이 꾸준하게 성적을 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숙제이자 목표인 셈이다.

허재에 대한 언급 없이 허훈을 논하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요즘 아버지가 너무 바빠서 연락이 잘 안 된다"며 웃었다. 그를 두고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이란 표현이 흔한 만큼 아버지의 그늘을 의식할 법도 하지만, 허훈은 내색하지 않았다.

"남들이 '너, 아무리 잘해도 아버지 절대 못 따라간다'고들 하는데 그게 싫지 않아요. 괜히 농구 대통령이겠어요. 다 인정하고, 오히려 자부심도 느낍니다. 실제로 전 아버지보다 뛰어난 게 없어요. 그래도 저는 요즘 시대에 맞는, 저만의 플레이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부산=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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