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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WTO서 개도국 지위 포기했다는데… 한국은 과연 선진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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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대부분 지표에선 선진국

"한국 같은 선진국(advanced coun try)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이용해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라."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칭찬(?) 한 줄 때문에 한국은 궁지에 몰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못 박아 버린 것이다. 물론 그의 진짜 의도는 한국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에 따른 관세 특혜 등을 포기하란 압박. 그로부터 석 달 뒤인 지난달 25일 우리 정부는 공식적으로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그러자 개도국 지위에 따른 보호 관세 및 보조금 혜택 등을 받던 농업계는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반발 여론이 불거졌다. 실제로 한국이 여러 기준에서 선진국 기준에 걸맞은 국가냐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도 1인당 국민소득을 시작으로 경제의 노동생산성, 근로시간, 연구개발 투자 지표 등 온갖 수치가 등장하며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그만큼 적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국민 인식도 거의 반반으로 나뉜다. 정부는 매년 '공적 개발 원조 국민 인식 조사'를 실시하며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여기느냐는 문항을 포함하고 있다. 가장 최근 조사인 2016년도 결과에 따르면 선진국이라고 답한 국민은 52.4%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2011년 37.3%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것이다. 여전히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국민이 그만큼 많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선진국 기준을 적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은 이미 23년 전인 1996년 통과했다. 29번째로 OECD에 가입하면서 사회적으로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란 여론이 불었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OECD 가입 다음 해 외환 위기가 터지고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경제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제금융을 받기 몇 달 전 IMF는 기존 미국·일본·독일 등 이른바 G7 국가에 더해 한국도 선진 경제국으로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20세기부터 꾸준히 통용된 선진국 기준은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약 3400만원) 이상'이다. 한국은 작년에 이 기준을 통과했다. 세계은행에서 분류하는 고소득 국가(1인당 GNI 1만2000달러 이상)는 이미 된 지 오래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독자적으로 G20 회원국이거나 수출·수입량이 전 세계 무역량의 0.5%를 차지하는 경우에도 개도국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모든 조건에 한국은 해당한다.

최근 흐름은 단순히 소득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종합해 선진국 여부를 가늠하는 것이다. 대표적 지표가 유엔에서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다. 이 지수는 소득에 교육 수준, 기대 수명 같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만든 것으로 '매우 높음(very high)'에 포함되면 선진국 반열에 든 것으로 본다. 한국은 이 '매우 높음'에 속하는 국가 중 하나로 2017년 기준 22위를 차지해 일본의 바로 아래 순위였다. 또 2016년에는 OECD 멤버 중에서도 최고 선진국 모임으로 통하는 파리클럽에도 가입했다. 국제 채권국, 즉 다른 나라에 돈을 많이 빌려준 부자 나라들의 협의체다.

선진국 대부분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여지없는 선진국이지만, 여전히 선진국으로 보기에 무리라는 의견도 많다.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라는 반론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높은 자살률과 긴 노동시간이다. 전자는 OECD 회원국 중 1위, 후자는 2위다. 거기에 소득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는 반면 노동생산성과 경제성장률이 점점 감소 추세에 있다는 것 역시 감점 요인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경제 규모나 소득 같은 하드웨어는 한국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을지 몰라도 경제의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선 여전히 한국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일례로 경제의 기초 체력을 보여주는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체코나 폴란드와 비슷한 정도이며 다른 여러 수치도 아직 미국, 일본 등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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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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