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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SPO CRITIC] "여자축구를 남자와 비교하지 말라" 벨 감독의 시선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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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축구회관, 한준 기자] "여자 축구에 대한 시선을 바꿔 놓는 것도 나의 목표다."

대한민국 여자 축구 대표팀에 이토록 큰 관심이 모였던 게 언제인가 싶다. 여자 축구 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된 22일 오후 콜린 벨(58, 잉글랜드) 감독의 취임 회견에는 통상 파울루 벤투 남자 대표팀 감독의 회견만큼이나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벨 감독도 "이렇게 많은 미디어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오늘 모든 미디어를 통해 한국에서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것 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아직 여자 축구 환경은 척박하고 관심도 미미하다. 최근까지 여자 대표 선수들의 소원도 A매치 친선 경기를 치러보는 것이었다.

벨 감독의 이날 취임 회견에는 오는 2024년까지 5년 간 총 100억 여원을 여자 축구에 지원하기로 한 신세계 그룹의 이름이 전면에 함께 있었다. 벨 감독은 경험도 있고, 실적도 있는 명감독이다. 김판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감독"이라고 말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이 마인츠를 이끌던 시절 23세 이하 팀 감독으로 협업했고, 프랑크푸르트 여자 팀의 2015년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으며, 국가 대표 레벨에서는 아일랜드 사령탑으로 활약했다. 가장 최근 이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챔피언십으로 내려온 허더즈필드타운 남자 팀의 수석코치다.

한국 축구 입장에선 시기가 잘 맞았다. 벨 감독이 허더즈필드타운에서 막 물러나 야인이 되자마자 오퍼를 보낼 수 있었다. 벨 감독은 2011년 SC 07 바트 노이엔아 감독을 맡아 여자 축구 무대에 투신한 뒤 10년 가까이 여자 축구 무대에서 일했다. 남자 축구에 비해 여자 축구의 역사는 짧다. 여자 축구 전문가도, 여성 축구 지도자도 많지 않다. 여자 팀을 맡은 이들도 남자 축구를 지도하다 기회를 잡지 못한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벨 감독은 그런 여자 축구 무대에서 흔치 않은 전문가다.

남자 축구와 여자 축구 무대에서 모두 성과를 낸 벨 감독에게 "남녀 축구의 특성 차이"를 물은 것은 그래서다. 유럽 최전선의 여자 축구를 이끌어 본 벨 감독의 접근법은 어떻게 다를까? 벨 감독은 짧은 질문에 긴 대답을 내놓았다. 자신의 축구 철학이나 향후 운영 방안에 대한 질문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했다.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며 부연 답변을 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 여자 대표팀을 맡은 것이 단지 경기 성적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자 축구를 향한 시선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는 여자 축구에 남자 축구라는 기준점과 거울로 투사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 여자 축구를 남자 축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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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선 질문에 대한 답부터 했다. "물론 피지컬이 다르다"는 일반론으로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체격적인 부분이다. 여자 팀에서 190cm 이상의 신장을 가진 선수 6~7명이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다음으로는 성격적인 부분이다. "두 번째는 여자팀은 감정이 풍부하다. 조금 더 헌신적이라고 생각한다. 감독 입장에서 이런 부분은 보람이 있다." 벨 감독은 풍부한 감정을 통한 팀에 대한 헌신이 높고, 가르친 것에 대해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빨아들인다며 지도자로서 여자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이 보람있다고 했다. 소통 과정도 더 세세한 부분까지 이뤄진다는 특성도 말했다.

"헌신적이란 부분은 스폰지같이 감독에게 와서 소통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측면이다. 마지막으로 여자 선수들은 질문이 많다. 왜 그런지 묻고, 정말로 알고 싶어한다. 이런 이들과 일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참 좋다. 선수들은 증명하고 싶어하고 해내고 싶어한다. 남자 선수들이 질문을 안한다는 것은 아니다. 남자축구는 감독 입장에서 몇번 지시하면 바로 선수들이 이행한다는 당연한 기대가 있기에 질문이 비교적 적다고 생각한다. 한국 여자 축구팀도 분명히 이런 헌신적 태도와 감정이 풍부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해서 이기는 팀을 만들겠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기면서 한국에 있는 어린 여자 선수들이 많은 꿈을 꾸도록 하고 싶다. 여자 축구에 대한 시선을 바꿔 놓는 것도 나의 목표다."

벨 감독은 "남자 축구와 여자 축구를 비교하는 오류를 많은 이들이 범한다"며 여자 축구의 성취와 경기를 평가할 때 남자 축구와 비교하려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체격적으로 작고 느릴 수밖에 없는 점"이라며 "여자 경기는 여자 경기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자 팀의 플레이와 여자 선수의 성취를 남자 축구의 플레이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여자 경기는 여자 경기만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독일축구협회 라이선스 교육 도중 다른 지도자들과 여자 축구에 대해 토론하며 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날 모인 한국 취재진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일화였다.

"그때 미셸이라는 코치에게 내가 물었다. 당신이 지금 테니스 지도자라고 가정해보자. 세계 랭킹 300위 권에 있는 남자 선수를 지도할 기회를 제안받았는데, 그 다음 날 여자 테니스 최고의 선수인 슈테피 그라프를 코칭할 수 있는 제안을 받았다면.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히 답은 슈테피를 지도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독일에 살 때, 1990년대 테니스가 인기가 있었다. 가장 유명한 남자 선수는 보리스 베커, 여자 선수는 슈테피 그라프였다. 그때 어느 누구도 둘을 비교하지 않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남녀 축구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여자 축구는 여자 축구로 바라봐줬으면 한다."

여자 축구는 경기력이나 산업적으로도 이제 막 성장하고 있는 단계다. 여자 축구의 위상이 남자 축구에 비해 낮은 게 현실이나 그 격차는 차츰 좁혀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여자 축구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여자 축구만의 매력을 아는 팬도 늘어나고 있다. 벨 감독이 한국 여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훈련과 경기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여자 축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까지도 바꿔놓을 수 있는 사건이다.

물론, 벨 감독의 화려한 취임사가 성적으로 연결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벨 감독에게 올림픽 예선 등 당면한 성적과 관계없이 2022년 여자 아시안컵, 2023년 여자 월드컵까지 3년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남자 축구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에 이룬 업적을, 벨 감독이 여자 축구의 유산으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실제로 2023년 여자 월드컵 유치를 국제축구연맹(FIFA)에 신청한 상황이다. 취임 회견에 참석한 모든 기자들과 악수를 하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떠난 벨 감독이 임기를 마친 시점에 더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하며 웃으며 떠나는 날이 올 수 있길 바란다.

스포티비뉴스=축구회관,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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