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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주목 받는 아세안

北과 돈독한 메콩국가들, 남북관계 위한 ‘안보 우군’ 활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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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30년, 메콩 시대가 열린다]

<2> 한반도의 새로운 파트너

北, 혈맹 중국과 관계 부침 있지만 메콩국 의견은 경청

“ARF에 남북 함께할 플랫폼 확대, 주기적 ‘대화 회의’도 한 방안”
한국일보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2016년 7월 28일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 중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각국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북핵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ARF는 유엔을 제외하고 북한이 대표단을 파견하는 사실상 유일한 다자외교협의체로 꼽힌다. 2010년부터 매년 ARF에 참석해온 북한은 이 회의에서 메콩 지역 국가들과 꾸준히 접촉하며 외교적 고립감 해소를 위한 공간으로 삼아 왔다. 비엔티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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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어 제6차 핵실험으로 북한에 대한 전 세계 비판이 극에 달했던 지난 2017년 9월 초.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10개국 외교장관들 사이에서는 관련 입장 발표를 놓고 한바탕 내홍이 일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잇따라 거스른 북한에 ‘이번만큼은 규탄(condemn)이라는 단어를 써서 주의를 줘야 한다’는 다수 입장과 ‘그건 너무 심하다’는 소수 의견이 충돌하면서였다.

성명은 내용과 함께 발표 ‘타이밍’이 중요했지만 대화로 이견을 좁혀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세안은 모든 의사결정에 만장일치제를 적용한다. 아세안 외교가 관계자는 “당시 라오스를 중심으로 한 일부 메콩 지역 국가들이 북한을 싸고도는 바람에 많은 외교관의 속이 탔다”며 “결국 ‘개탄’(deplore)이라는 단어로 성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우려’(concerns), ‘깊은 우려’(grave concerns) 보다는 강도가 높았지만, 유엔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와 단체가 성명으로 표현한 ‘규탄’ 도입에는 실패한 것이다.

◇북한 편에 섰지만, 한국에 열린 메콩

이 장면은 메콩 지역 국가들이 북한과 어느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아세안이 대북 이슈에 전반적으로 친ㆍ중립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면, 그 안의 메콩 지역 국가들은 북한 쪽으로 크게 기울어 왔다. 이는 일견 한국이 아닌 북한을 편드는 국가들의 그룹으로 이해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북한을 국제사회 일원으로 이끌어 내고 한반도 긴장 완화를 추구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선 큰 우군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태국 방콕에서 만난 박동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동남아 서부협의회 부회장은 “북한 입장에선 똑같은 잔소리도 미국이 하면 반발하지만, 메콩 국가들이 하면 어느 정도 경청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라며 “남북관계 부침 속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지향해야 하는 한국이 경제협력 대상으로는 물론 안보 협력 파트너로서도 메콩 국가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특히 해외조직은 광범한 대북 정보수집 등을 통해 통일정책에 관여한다.

실제 북한과 메콩 그룹 간 끈끈한 관계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열린 양자회담 빈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6년과 2017년을 제외하면 북한은 최근 6년간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 등 메콩 지역 국가들과 한해도 거르지 않고 양자 회담을 했고, 또 지난해에는 메콩 5개국 모두와 양자 회담을 개최했다. 혈맹관계라는 중국과의 회담은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메콩 그룹과는 꾸준한 접촉을 이어 온 셈이다. 지난 6일 방콕에서 열린 동아시아ㆍ아세안경제연구소(ERIA) 주최 세미나에 참석한 라오스 언론인 니안 린 아웅은 “북한은 미국과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없다. 북한이 보여주는 일련의 행동은 실제적 파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외부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라오스의)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라오스뿐만 아니다. 지난해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베트남사회과학원 주관으로 열린 ‘한ㆍ메콩 피스(평화협력) 포럼’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나왔다. 팜 홍 타이 베트남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원장은 “북한의 핵 보유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자 미국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남북관계도 남북 스스로 독자적인 해결 능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1.5트랙 차원의 포럼이긴 했지만,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북한처럼 과거 대미 항쟁을 치른 베트남의 북핵 문제 인식 층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북 공동참여 플랫폼 늘려야

아세안이 남북 간 ‘중간자’로서 역할을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이후. 북한은 이 무렵부터 아세안 중심의 다자외교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거의 매년 대표단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한국대로 ARF를 통해 북한의 대남 대화 의지를 우회적으로 확인하는 채널로 삼았고, 북한 역시 ARF에서 메콩 그룹 국가와 활발하게 접촉하며 외교적 고립감 해소 기회로 이용했다. ARF는 유엔총회를 제외하고 북한이 참가하는 사실상 유일한 다자외교협의체다.

아세안, 그 안에서도 북한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메콩 지역 국가들과 한국이 보다 결속되기 위해서는 ARF 외에도 남북한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대화 플랫폼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실제 이에 대한 목소리는 지난 8월 초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방콕 ARF에 불참하면서 더욱 높아졌다. ‘노딜’로 끝난 2차 북미 정상회담 충격 여파이긴 했으나, 동시에 ‘중재자’ 아세안의 한계이기도 했다.

마티 나탈레가와 전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은 그의 저서 ‘아세안은 중요한가?’(Does ASEAN Matter?)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남북이 참가하는) ARF 플랫폼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경우 ‘아세안+3(한중일)’ 회의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아세안 중심의 다자협의체와 달리 주기적으로 ‘대사회의’를 갖지 않고 있는 ARF에 대사회의를 두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추가 플랫폼 개발 노력 외에도 메콩 그룹을 중심으로 한 아세안 내 친북파들을 더욱더 끌어 안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방콕 출라롱꼰대학교 부설 국제안보연구원(ISIS)의 카위 총키타완 선임연구원은 “메콩 그룹이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나, 북한에게 메콩 그룹에 대한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한국이 먼저 나설 필요가 있다”라며 “한국이 메콩지역 개발 이슈에 적극 참여하고, 그를 통해 이 지역과 관계를 다져간다면 메콩 국가들은 훌륭한 우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협력을 통한 우군 확보 차원에서 메콩 5개국이 중심이 된 ‘아예야와디-차오 쁘라야-메콩 경제협력전략(ACMECS)’이 주요 공략 포인트로 거론된다. 태국 주도로 2004년 출범한 경제협력체로, 경제 성장을 통한 정치ㆍ외교적 안정까지 노리고 있다. 주태국 한국대사관의 김정은 공사참사관은 “ACMECS는 내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최근 한국과 일본, 미국, 중국, 인도, 호주 등 6개국을 개발파트너로 초청했고, 여기에 한국이 가장 빠르게 참여의사를 밝혔다”며 “내달 한ㆍ메콩 정상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협력 사업들이 공론화되면, 한ㆍ메콩 협력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콕=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방콕ㆍ하노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 위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태국 방콕포스트ㆍ한국일보의 공동 취재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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