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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논란의 학종, 어떻게 고쳐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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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슈

입시 공정성과 학종 개선안

2007년 서울대 등 시범 도입

서울대 일반고·비서울 합격 늘어

비교과 영역 부모 영향 우려

기재 간소화 등으로 개선해와

2025년 고교학점제와 결합

전반적 교육과정 개편으로

기계적 정량평가 불가능해져

학종 서류와 면접으로 간소화

정보공개·투명한 절차 강화

영상 기록·이의 절차 마련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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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개선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일 “대학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교육부가 대학 실태조사와 더불어 개선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교과 부문 폐지 등도 거론되지만 지난 10년간 학종이 만들어낸 긍정적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학종을 어떻게 고쳐 쓸 수 있는지, 학종 제도를 초기부터 경험해온 교육 전문가가 제언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1일 “대학입시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교육부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개선안 마련에 들어갔다. 교육계에서는 학종 비교과 부문인 자기소개서, 수상 경력 기재 등을 폐지하자는 요구부터 지역균형, 사회적 배려 대상 등 고른 기회 선발을 늘려야 한다는 다양한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교과목 내신성적 외에도 자기소개서와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진로활동, 수상 경력 등 비교과 부문까지 기록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토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종의 뿌리는 1922년 미국 다트머스대가 최초로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다. 미국도 아직 역사가 100년이 되지 않은 셈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서울대 등 대학 10곳에서 처음으로 시범 도입했다. 2008년에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대학 40곳에 157억원을 지원하면서부터 입학사정관제의 내실을 다지고자 했다. 그러니 이제 불과 10년 남짓한 제도인 셈이다.

미국에서는 입학사정관제를 유대인 출신의 학생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추세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했다. 이 말은 관점을 달리 보면, 학생선발에 특정한 의도가 개입될 수 있는 제도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입학사정관제, 즉 학종은 철저한 정보공개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가 다른 어떤 입학전형보다 중요하다. 제도를 둘러싸고 적절한 감시와 균형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약속돼 있지 않다면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대입 전형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반면에 사회적 합의만 잘 이룬다면 가장 이상적인 학생선발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선택은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

학종으로 이름이 바뀐 이유

미국식 입학사정관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초기에는 미국식 제도로 운영되다 보니 우리 토양과 문화에 맞는지 제대로 점검을 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학교 밖이나 부모 또는 친·인척과 지인 등 3자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을 학생부에 그대로 입력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미국에는 이런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선 그렇지 않았다. 최근에야 그러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제의식은 커졌다.

이런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생겨난 한국식 입학사정관제의 대원칙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에서 소화할 수 없는 내용은 학생부에 입력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학 입학전형에서도 평가요소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토익, 토플 등 외국어 성적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금지됐다. 수상 실적도 교내 대회가 아닌 외부 대회 수상 실적은 기재할 수 없다. 심지어 교육부에서 시상하는 대한민국 인재상도 학생부에 입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전형의 이름도 ‘입학사정관전형’에서 ‘학종’으로 변하게 된 배경이다.

학종은 정성적 평가로 운영되는 선발 방식이다. 따라서 개인의 주관적 평가를 얼마만큼 객관화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학종 평가에서 두 가지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첫째, 복수의 평가자 원칙이다. 학생의 서류를 평가하는 담당자는 반드시 두명 이상이 되도록 설계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판단은 주관적이지만 열 사람의 판단은 그보다 객관적이다. 각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열배로 합쳐진 것이니 그만큼 객관적인 평가에 다가설 수 있다.

둘째, 단계별 전형 설계 원칙이다. 1단계에서 두명 이상의 평가자가 마지막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1단계 평가에 이어 전형소위원회, 전체위원회 등의 단계별 과정을 거치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도록 설계한다. 아울러 평가자 사이에 격차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다른 평가자들이 다시 결과를 내도록 하여 평가자 간의 오차가 일정 범주 안에 들어왔을 때만 평가 결과를 인정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재평가를 한다.



한겨레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여전히 학생부 비교과 영역에서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지위와 자본이 자녀의 학생부 비교과 영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비교과 폐지 목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폐지할 때 생기는 문제가 있다.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가 곤란해진다. 학교는 지식만 전달하고 평가하면 되는 곳인가. 교과 성적만 좋으면 훌륭한 학생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답하는 순간, 학교와 학원의 경계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학교가 학원과 다른 것은 점수만 올려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르쳐야 하는 곳이 학교라는 공간이다. 입시제도와 평가요소가 학교 현장에 주는 신호는 대단히 중요하다.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은 교육의 기본이다. 가르치되 평가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종에서 비교과를 아예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문제가 된다면 이를 보완하면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

예컨대 ‘자율활동’ 가운데 같은 학년 혹은 전교생이 함께하는 활동을 굳이 입력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해봐야 한다. 전교생이나 같은 학년 학생이 모두 함께 받은 교육이나 강연 등은 학교 소개 자료로 학교 누리집에 공개하면 된다. ‘동아리 활동’은 기재를 간소화해야 한다. 대학입시만을 위해 동아리를 만들고 유지한다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일까.

다음으로 ‘봉사활동’을 보자. 현재 입력방식은 봉사 영역과 내용 그리고 시간을 넣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봉사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부모의 영향력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봉사 영역과 내용은 기재하지 않고 봉사 시간(20시간)을 채웠는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된다.

마지막으로 ‘진로 활동’이다. 자신의 적성과 특기와 역량을 파악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가는 모습은 참으로 교육적이고 바람직한 문화지만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게 비교육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로 탐색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삶이 가능한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을 제공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배움과 성장이 일어난다. 이처럼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의 비교과가 갖는 교육적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폐지하거나 없애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것도 역시 어리석기는 매한가지다.

고교학점제가 가져올 변화

학종의 긍정적 신호는 포착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서울대 입시에서 일반고와 비서울 지역 학교 졸업생들의 합격생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다른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보다 학종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높았고, 중도 탈락률은 더 낮았다는 국정감사 자료가 최근에 나왔다. 이미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이 증언한 것처럼 수능시험 체제에선 전국에서 400곳 정도의 고교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는데, 학종이 도입된 이래 최근엔 900여곳에서 합격생을 배출할 정도로 학종이 일반고와 지방 고교에 큰 혜택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종과 고교학점제가 2025년이 되면 본격적 결합이 이뤄질 것이다. 2025년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과 특성에 맞게 과목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수업 내용과 방식이 많이 달라져 일괄적이며 정량적인 평가는 곤란하게 된다. 질적 평가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학생부교과전형의 잔여 임기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되기 이전까지 아니겠냐는 의견이 우세하다. 학종만 유지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학생부교과전형은 말 그대로 교과성적을 기계적으로 정량평가해 선발하는 전형이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된 상황에서 학생마다 선택과목이 다 다르고 과목의 난이도와 학생 규모도 다양한데 정량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생부교과전형은 고교학점제 아래에서는 순기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학종도 서류와 면접으로 간소화될 것이다. 자소서는 학생부 기재 내용을 근거로 작성한다. 면접은 학생부 기재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된다. 추천서는 학생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란’이 기능과 역할을 대신한다. 결국 1단계 서류평가는 학생부 한장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 2단계 면접평가는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으로 한정해 질문과 응답이 이뤄지도록 명확한 기준과 지침을 대학에 제시할 것이다. 학생부에 기재된 다양한 내용을 중심으로 학생과 질의응답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깊이와 변별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또 대학은 면접 장면을 영상이나 기록으로 남기는 등 전형 결과에 대한 공식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경우는 제3의 검증기구를 통한 검증 절차를 거칠 수도 있다.

학종은 이제 막 10년쯤 된 제도다. 잘 가꾸고 곧게 성장시켜야 한다.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면서 공교육 정상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학종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전경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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