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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TEN 인터뷰] ‘우아한 가’ 배종옥 “냉정한 킹메이커, 매력있는 악역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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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아시아=태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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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종영한 MBN ‘우아한 가’에서 MC그룹 오너리스트 전담팀 TOP의 팀장 한제국 상무를 연기한 배우 배종옥./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악의 축이지만 파워풀한 여성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지난 17일 종영한 MBN 수목드라마 ‘우아한 가’를 통해 35년차 배우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 배종옥의 말이다. 차분하지만 냉정하고 잔인하게 일을 처리하는 킹메이커 한제국을 연기한 배종옥은 극의 흐름을 주도하며 다른 인물들과 팽팽한 대립구도를 펼쳤다. 특히 절제된 감정 표현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결이 다른 카리스마를 완성했다. 배종옥은 “한제국은 지금까지 나의 필모그래피를 뛰어넘은 캐릭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우아한 가’를 마친 배종옥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우아한 가’가 MBN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처음부터 잘 될 거라 예상했나?
배종옥: 전혀 못했다. 전작 ‘레벨업’ 마지막 회 시청률이 0.5%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1%나 넘길 수 있을까 싶었다. 4%만 넘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이야기했다. 제작발표회 때 이장우 씨가 4.5%가 목표라고 이야기해서 “너 정말이냐”라며장난도 쳤다.

10.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배종옥: 처음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했다. 남자로 설정되어 있던 인물을 여자로 바꿨을 때 내가 더 임팩트 있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계속 아쉬움이 남았다. 내 또래 여배우들은 할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적인데, 이 캐릭터는 너무나 새롭고 매력적이었다. 어느 순간 해야겠다 마음먹게 됐다.

10. 남자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배종옥: 작가 선생님이 나를 배려해 여자 톤으로 대사를 바꾸겠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했다. 이름도 바꾸지 말고 그대로 하자고 했다. 그래서 제국의 대사는 늘 ‘하시겠습니까’ ‘그랬나’처럼 남자 말투다. 이런 말투를 여자가 하니 오히려 느낌이 새롭더라. 이런 역할은 보통 남자의 영역이지 않나. 그 영역에 내가 도전했고, 다행히도 괜찮다는 평가를 얻어 여배우로서 매우 만족스럽다.

10.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지?
배종옥: 여배우는 보통 젊었을 때 주인공을, 30~40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엄마 역할을, 40~50대는 할머니로 간다. 그 단계 사이마다 공백이 온다. 잘 넘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고, 역할을 맡기도 어렵다. 또래 여배우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엄마 역할만 해야 하나’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런 고민들이다. 나는 그래도 연극으로 갈증을 풀기도 했고, 다른 배우들에 비해 일하는 여성의 역할을 많이 맡기도 했다. 엄마 역할을 해도 주관이 강한 캐릭터였다. 배우로서 놓치고 싶지 않았고, 운도 따라줬다. 그래도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갈증은 늘 있다.

10. 연기하면서 가장 짜릿했던 장면은?
배종옥: 옥상에서 윤도(이장우 분)하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내가 윤도에게 “세상을 내가 움직인다고 생각해봐, 너무 짜릿하지 않니?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없어. 꿈꾸지 마. 나와 일하자”라고 말한다. 그게 한제국의 생각이자 원동력이다. 이 여자는 그런 꿈을 꾼 거다. 자기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거에 쾌락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걸 입 밖으로 표출한 장면이라 가장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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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할 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낀다”는 배종옥./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10. 한제국은 정의로운 판사에서 냉정한 킹메이커가 됐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배종옥: 한제국은 과거 판사로 있을 때 선배들의 부정한 행위들을 보고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지방 좌천이라는 굴욕이었다. 그때 마침 MC그룹 회장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아마도 한제국은 그 순간 비틀어진 욕망을 가졌을 거다. ‘너희가 그렇게 정의로워? 아니잖아. 나는 권력과 손잡지만 정의로운 가면을 쓰진 않을 거야’라고. 철저히 뒤에서, 자본의 힘으로 얻은 정보들로 세상을 쥐락펴락하며 자신의 야망을 실현했을 거다. 한제국은 늘 당당하다. 그 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하지 않아도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니까.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만의 일이 아니야’라고 항변하지 않을까 싶다.

10. 재벌가의 비리, 살인사건 등 소재 자체는 참신하지 않다. 그럼에도 인기를 얻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배종옥: 재벌가 이야기는 많았지만, 재벌가를 컨트롤하는 오너리스크 전담팀 TOP(탑)의 존재가 신선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재벌 그룹과 탑, 살인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전개와 한제국이라는 막강한 인물, 그와 인물들과의 대립 관계 등이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킹메이커 이야기는 옛날부터 있었지만, 전면에 내세운 건 이 작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10. 임수향, 이장우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배종옥: 요즘 젊은 배우들한테는 이래라 저래라 조언할 게 없다. 오히려 배울 게 많다. 두 배우 모두 자기 색깔대로 캐릭터를 만들더라. 요즘 연기 스타일은 옛날과 조금 다르다. 나도 옛날에는 대사를 정확하게 딱딱 짚었지만, 이번에는 많이 날리면서 자연스럽게 넘겼다. 소리치거나 화내지 않고 부드러운 설득과 협박을 했다. 이게 여자이기에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의도대로 잘 살지 걱정했는데, 방송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잘 나와 기분이 좋았다.

10. 역할에 집중하느라 현장에서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았다던데?
배종옥: 작품을 하는 동안은 그 인물의 세상에 머물려한다. 캐릭터도 더 단단해지고 표현도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하는 동안은 사람들을 잘 안 만난다. 현장에서도 필요한 말 이외에는 안 한다.

10. 1985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나.
배종옥: 나는 연기를 할 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쉴 때가 더 피곤하고 힘들다. 사람들도 어디 아프냐고 한다. 일하는 게 즐거우니 꾸준히 하는 것 같다. 나보다 이순재 선배님이 더 대단하다. 연극에 지방 공연에 영화에.(웃음) 어떻게 그걸 다 하느냐고 물으면 그냥 허허 웃으신다. 나도 건강관리 잘해서 이순재 선배님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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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옥은 “마음 공부를 통해 힘든 시기를 극복했다”고 밝혔다./사진제공=제이와이드컴퍼니


10.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는지?
배종옥: 40대 초반에 힘든 시기가 있었다. 배우를 오래 하다 보면 절정으로부터 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조울증이 왔었다. 그때 길벗이라는 모임에 들어가 마음공부를 했다. 그 수련을 통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고, 나를 사랑하게 됐다. 그 후부터 나에게 시련들이 오면 그에 함몰되지 않고 직시하면서 갈수 있었다. 이런 마음의 공부가 배우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부에 의해 나를 평가 당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막상 그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은데 말이다.

10. 2년 전 tvN ‘인생술집’ 출연 당시 신인 시절 연기력 논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도 했다.
배종옥: 지난 일이고 지금은 아니니까 말할 수 있었다. 후배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힘든 일이 생겨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이 힘들어 할 필요가 없다. 실수를 통해 성공으로 나아간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논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통해 변화하고 노력해서 극복했을 때 의미가 있는 거다. 그런 게 아니면 삶이 뭐가 재미있겠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10. ‘우아한 가’는 자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배종옥: 여자로서 남자의 영역에 들어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연기한지 30년이 넘다보면 뭘 해도 기본이다. 아무리 잘해도 ‘배종옥이니까’ 하고 넘긴다. 대중들은 새로운 스타들에 더 집중한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서 한제국을 집중했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고 의미 있는 일이다. 자신이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뛰어 넘는다는 게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이 그 역할을 했다.

10. 앞으로 한제국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만날 수 있을까?
배종옥: 나는 어느덧 60대로 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해야 할지 고민도 많다. 그 과정 중에 한제국을 만났다. 앞으로 언젠가는 할머니 역할도 할 거다. 내 바람은 무언가를 뛰어넘기보다 잘 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제는 연륜과 내공의 깊이를 통해 연기의 격을 높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10. 한제국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배종옥: 너는 멋진 여자였어.(웃음)

태유나 기자 you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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