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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설] 사상 최저 기준금리…정책전환 신호 분명하게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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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어제 기준금리를 1.50%에서 1.25%로 낮췄다. 지난 7월에 이은 석 달 만의 추가 인하다. 2년 전 벗어났던 역대 최저금리 수준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만큼 경기 하강이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다. 한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내외 기관들은 잇따라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민간에서는 2% 성장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상승률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서 ‘D(디플레이션)의 공포’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기우(杞憂)라고 강조했지만, 한은으로선 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바닥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조만간 추가 금리 인하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 경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0%대 금리 시대’가 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 대내외 경제 여건은 짙은 먹구름에 싸여 있다. 미·중이 ‘스몰 딜’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세계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국내적으로는 노령화 같은 인구 구조적 요인이 쌓이는 가운데 한·일 갈등, 정치 불안 같은 경제 외부적 문제도 수두룩하다. 기준금리 0.25% 인하로는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기 어렵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전문가의 예측이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대응하겠다고 하나 재정 여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의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서 소비와 투자 부진 원인이 높은 금리 때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이 얼마나 잘 유통되는지를 나타내는 화폐유통 속도는 올 2분기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여윳돈이 있어도 소비와 투자를 하는 대신 현금과 예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여기엔 불안한 대내외 여건에 제대로 대응하기는커녕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검증 안 된 정책으로 경제 불확실성을 높인 정부 책임이 크다. 경직된 주 52시간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낡은 규제, 반(反)기업 정서 등에 회의를 느낀 기업인들은 돈을 싸 들고 해외로 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풀지 않고 금리만 내리면 돈이 소비와 투자로 돌지 않고 부동산 불안 심리만 자극할 우려가 크다.

최근 청와대 이호승 경제수석은 우리 경제가 선방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물론 부정적인 전망이 자기실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대외 여건 핑계만 대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경제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대통령의 인식과도 차이가 느껴진다. 두 달간 국정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조국 사태가 정리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경제 문제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성장을 가로막는 정책은 이제 정리하겠다는 분명한 신호부터 국민과 시장, 기업에 보여주는 것이 그 시작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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