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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독]국비 압박에…직업훈련기관 “교육생들 임신·출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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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취업률 계산 때 ‘불가능 요인’ 반영 않고 심사

학원장들, 국비 탈락 우려 “운영 위해선 어쩔 수 없어…”

반인권적 산정 민원에 정부 “평가 지표 내년부터 개선”

경향신문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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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능력 훈련기관에서 여성 교육생들에게 “임신·출산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구직(실업)자 직업능력 훈련기관의 취업률을 계산할 때 임신·출산, 투병 등 취업이 불가능한 요인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률이 낮으면 훈련기관들은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14일 세종시에 있는 한 간호조무사학원장 ㄱ씨(47)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비인권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합리한 제도 때문에 여성 교육생들에게 임신·출산을 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2018년 4월부터 ‘성과적정성’이라는 지표로 직업능력 훈련기관을 심사하고 있다. 성과적정성은 취업률을 뜻한다. 노동부는 전국에 있는 훈련기관을 직종별로 나눠 취업률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하위 30%에 속한 기관은 이듬해 국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문제는 취업률을 계산할 때 임신·출산, 투병, 간병 등의 사유로 취업을 못하는 사람들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위 30%에 속해 국비를 지원받지 못하면 훈련기관을 운영하기 힘들고 교육생 모집이 어렵다. 정부에서는 훈련 직종별로 국비 지원 비율을 정하고 있다.

간호 직종의 경우에는 훈련비의 85%를 정부가 훈련기관에 지급한다. 나머지 15% 금액은 교육생이 부담한다.

훈련기관이 국비 지원을 받지 못하면 교육생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커진다.

ㄱ씨가 운영하는 학원에서는 교육생 17명 중 3명이 임신으로 인해 취업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6월 심사에서 성과적정성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이 학원에 새롭게 등록한 교육생은 8명으로, 등록한 사람이 지난해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교육생이 취업했다고 인정받기 위해선 6개월~1년 교육을 받은 후 6개월 안에 취업하고 3개월간 고용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ㄱ씨는 “간호 직종은 1년9개월간 교육생이 임신하지 못하게 해야 취업률에 반영된다”며 “여성 교육생이 올 때마다 ‘임신했냐. 아이 몇 명 낳을 거냐, 더 안 낳을 거냐’ 물어본다”고 말했다. ㄱ씨는 임신한 사람은 아예 교육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도 했다. 구직 교육 현장이 여성의 임신·출산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ㄱ씨는 “임신·출산은 인권의 문제”라면서도 “학원 운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비인권적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비 지원을 받고 취업하지 않아도 교육생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지진 않는다. 취업 못한 책임은 오롯이 학원장이 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노동부와 직업능력심사평가원에 “취업률 산정 방식이 반인권적”이라며 개선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노동부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을 평가지표에서 고려하겠다고 했다.

노동부 인적자원개발과 관계자는 “임신·출산으로 인해 취업하지 못한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며 “내년 평가 때부터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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