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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문닫은 중개업소 "집값 안잡고 우리만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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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11시쯤 찾은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내 상가 1층은 유령 건물 같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곳엔 부동산 공인중개업소 약 50개가 있는데, 문을 연 곳은 5~6개에 불과했다. 문을 연 곳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보통 오전 10시쯤이면 다들 문을 여는데 불법행위 단속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지난 주말부터 대부분 문을 안 열고 있다"며 "단속 타깃이 되는 게 부담스러워 상가 내 중개사들끼리는 언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달 1일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14일부터 공인중개업소 불법행위에 대한 대대적 현장 점검에 나서겠다"고 예고하자 단속 대상 지역 중개업소들은 일제히 문을 닫고 있다.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단속 대상이 되면 꼬투리를 잡힐 가능성이 높은 데다, 문을 닫아도 전화로 웬만한 업무는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속 시작되자 문 닫은 강남 중개업소

잠실주공 5단지 외에도 강남구 은마아파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등 강남권 주요 아파트 주변 중개업소들은 지난 주말부터 문을 안 열고 있다. 은마아파트와 잠실주공 5단지는 서울을 대표하는 재건축 단지인 탓에 단속 1순위다. 둔촌주공도 분양가 상한제를 피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최근 매도 호가(呼價)가 오르고 있어 단속 가능성이 높은 단지로 꼽힌다. 정부는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서대문구를 집중 단속 대상으로 정했다.

조선비즈

정부와 서울시의 공인중개업소 불법행위 단속이 시작된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내 중개업소들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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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개업소들이 단속 시작과 동시에 문을 닫는 것은 단속이 먼지떨이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단속반이 출동하면 주변 중개업소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여러 업소를 단속하기 어렵다. 특히 외부에 공표하는 집중 단속에서는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과잉 단속이 빈번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전언이다. 송파구 A공인 대표는 "불법을 못 찾을 땐 몇 시간씩 사무실을 뒤지며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아낸다"고 말했다. 성동구 B공인 관계자는 "아들뻘 되는 공무원한테 정신없이 단속을 당하고 나면 '다시는 이런 꼴은 안 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단속 효과 의문… 실수요자 피해 우려

현장 단속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많다. 최근에는 주요 거래 정보를 휴대폰으로 주고받기 때문에 사무실에 있는 문서만 갖고 불법행위를 찾기 어렵다. 중개업소들이 문을 닫아버리면 단속마저 할 수 없다.

중개업소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영업이 완전히 막히는 것도 아니다. 전화로 약속을 잡고 커피숍 등 다른 장소에서 만나거나 밤에 영업하는 등의 편법이 이미 성행하고 있다. 실제 14일 찾은 잠실주공 5단지 내 중개업소 중 일부는 문이 닫혀 있었지만 내부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C공인 관계자는 "문을 닫으면 지나가다 들르는 신규 손님은 끊기지만 투자자 대상 영업은 별 타격이 없다"며 "중개사 인맥이 없는 실수요자나 전화 영업을 하지 않는 중개사들만 피해를 본다"고 전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투기 근절이라는 정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지나친 단속 때문에 선량한 중개사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장 단속과 별개로 실거래가 의심 사례 서면(書面) 검증도 하고 있다. 8월 이후 신고된 주택 거래 중 매수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차입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의심 사례를 찾아내 거래 당사자로부터 자금조달 계획서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실거래가 검증으로 대부분의 불법행위를 찾아낼 수 있는데 굳이 현장 점검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는 말이 나온다. 윤선화 서울글로벌부동산협회 회장은 "효과도 없는 현장 단속을 집값 오를 때마다 반복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진짜 투기꾼이나 투기를 조장하는 중개업소는 편법으로 단속을 피하는 반면, 현장 영업을 주로 하는 고령(高齡) 중개사나 주택 실수요자들은 불편을 겪는다"며 "단속 때문에 거래 절벽이 심화하면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snoopy@chosun.com);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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