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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에르빈 롬멜의 명예(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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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멍청하고 부지런한 군인은 국가를 위해 하루빨리 전역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고 알려진 에르빈 롬멜이 1944년 10월 14일 숨졌다.

2차대전 연합군사령부조차 경의를 표했다는 독일군 원수 에르빈 롬멜이 1944년 10월 14일 음독 자살했다. 그 해 7월 히틀러 암살 및 쿠데타 미수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강요 받은, 사실상의 약물 처형이었다. 그가 암살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증거는 없다. 다만 암살 주도파는 히틀러 축출 이후 연합국 수뇌부의 인정을 받던 그를 국가 원수로 추대해 종전 절차를 밟고 혼란을 수습하려 했다. 암살 주도파가 사전에 그와 접촉한 것은 밝혀진 사실이다. 그에게 저런 제의를 했고, 그가 즉답을 회피했다는 설이 있다. 어쨌건 히틀러는 롬멜에게 둘 중 하나를 택하게 했다. 특별 재판을 받고 반역자로 처형되거나 스스로 죽어 가족의 안전과 명예를 도모하거나. 그는 게슈타포 요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텐베르크 울름 시 집 인근 숲에서 음독 자살했다.

사관학교를 거쳐 1912년 소위로 임관한 그는 1차대전 전공으로 프로이센 군 최고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erite)’ 훈장을 받았다. 그는 대위로 진급했다. 나치가 집권할 무렵 그는 소령이었다. 1차대전 패전국 군인으로서 그는 히틀러의 군비 증강 및 국가 부흥 선언에 매료됐다. 34년 고슬라 주둔 당시 에른스트 룀 쿠데타 사건을 계기로 히틀러를 만나 충성을 맹세했고, 38년 총통 지휘본부 경비대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승승장구했다. 당시 이미 소장이던 그는 40년 중장으로, 42년 6월 독일군 최연소 원수 계급장을 달았다.

그는 2차대전 서부전선 기갑사단장으로서 나치 특유의 전격전을 이끌며 저 유명한 마지노선을 돌파했고, 41년 북아프리카에서 거둔 전과로 ‘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44년 유럽 B집단군 사령관으로서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을 막지 못했다. 이후 그는 패전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고, 히틀러에게 여러 차례 종전을 건의했다.

그가 피아를 불문하고 군인의 명예를 중시했고, 그런 점에서 친위대를 경멸했다는 이야기가 여러 일화를 통해 전해진다. 똑똑하고 게으른 자는 지휘관 감이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자는 참모 감이며, 멍청하고 게으른 자는 말단 병사로 쓸 만하지만, 멍청하고 부지런한 자는 나라를 위해 강제 전역시켜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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