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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이동귀의상담카페] 심리적 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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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70% 이상은 ‘트라우마’ 경험 / ‘외상 후 성장’ 하려면 감정 그대로 인정

세계일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확산하면서 키우던 돼지를 묻어야 하는 농장주는 물론 살처분 종사자들이 ‘심리적 외상’을 호소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인의 70% 이상은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경험한다고 한다.

‘심리적 외상’은 개인이 감내하기 어려운 심리적 위기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질병이나 죽음, 예기치 않은 사고나 자연재해, 각종 학대나 범죄 피해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촉발된다. 특히 각종 재난사고에 노출되는 소방공무원의 약 5.4%, 경찰공무원의 약 12.5%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심리적인 외상 사건 이후 나타나는 지속적인 증상)의 고(高)위험군으로 알려져 있다.

외상 경험 후의 회복과정을 연구한 미국 컬럼비아대 조지 보나노 교수는 외상 후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는 외상을 경험한 후 2년이 지나도록 PTSD 증상이 지속되는 ‘만성적 부적응형’으로 가장 심각한 상태다. 둘째는 외상 직후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1년 정도 지나면 원래의 적응수준으로 되돌아가는 ‘회복형’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형태다. 셋째는 ‘회복형’과 반대로 외상 직후 별다른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지 않다가 1년이 지난 후 갑자기 PTSD 증상이 심화되는 ‘지연된 애도형’으로 드물게 나타난다. 넷째는 외상을 경험한 직후 경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지만 빠른 시간 내에 적응상태를 회복하고 잘 유지하는 ‘탄력형’이다.

이런 가운데 어떤 사람은 단순히 외상 경험 이전의 적응수준을 회복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놀라울 만큼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는데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한다. 마치 비 온 뒤 땅이 굳어지고, 앓고 난 뒤 부쩍 성장한다는 것이다.

대개 ‘외상 후 성장’을 경험한 사람은 삶의 목표와 의미가 더 분명해졌다고 말한다.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누가 정말 소중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고 향후 사람들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 시간을 쏟게 된다. 또한 힘든 과정을 이겨내면서 자신감이 높아지고 자신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그러면 ‘외상 후 성장’은 어떻게 가능할까.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도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시간이 지난다고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거나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만약 아픔의 바다를 건너서 ‘외상 후 성장’을 하고자 한다면 어떤 사안에 대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 특정한 방향으로 느끼거나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자신을 옭아맬 필요도 없고 자신을 책망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슬픔에서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 고통스럽고 슬픔이 몰려들면 소리내 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억제하려고 하면 오히려 자꾸 되살아나게 되므로 그냥 흘려보낸다는 마음을 갖자. 아픈 기억이나 감정이 자꾸 살아나 마음을 꽉 메우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어보자.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좋다.

이동귀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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