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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여성의 삶 파고든 ‘장르 백과사전’… ‘관객모독’ 쓴 전위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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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폴란드의 여성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7)를 2018년 수상자로, 오스트리아 희곡 작가 페터 한트케(77)를 올해 수상자로 발표했다. 지난해 한림원 ‘미투’ 파문으로 시상을 건너뛰어 이번에 두 명이 호명됐다. 두 명을 발표한 것은 1974년 이후 45년 만이다. 한림원은 토카르추크에 대해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의 형태를 구현하는 상상력을 담은 작품을 백과사전 같은 열정으로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한트케에 대해서는 “인간 체험의 뻗어 나간 갈래와 개별성을 독창적 언어로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시상식은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며, 수상자는 총상금 900만 크로나(약 10억 9000만원)와 메달, 증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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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는 삶의 은유, 풍부한 내러티브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휩쓸고 있는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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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폴란드 올가 토카르추크

폴란드의 여성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토카르추크는 영국의 온라인 베팅 사이트 나이서오드에서도 앤 카슨, 마거릿 애트우드(이상 캐나다), 마리즈 콩데(프랑스)에 이어 배당률 4위에 올랐다.

토카르추크는 15번째 여성 수상자이자 다섯 번째 폴란드인 수상자다. 그는 폴란드에서 가장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야말로 ‘폴란드 문학의 현재’다.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문화인류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다. 특히 칼 융의 사상과 불교 철학에 주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신화와 전설, 외전(外典),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차용해 인간의 실존적 고독, 소통의 부재, 이율배반적인 욕망 등을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한다.

노벨상위원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뭐라고 해야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매우 영광”이라고 했다. 이어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의 형태를 구현하는 상상력”이라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에 대해 “말 그대로 독일로 넘어가는 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다”고 웃으면서 “이 상이 중부 유럽이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기에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맨부커상 수상작인 ‘방랑자들’을 비롯해 ‘E. E.’(1995), ‘낮의 집, 밤의 집’(1998), ‘세상의 무덤 속 안나 인’(2006), ‘망자의 뼈에 쟁기를 휘둘러라’(2009), ‘야고보서’(2014) 등을 썼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장편소설 ‘태고의 시간들’(은행나무)이 첫 번역 출간됐다. 허구와 현실이 절묘하게 중첩된 강상의 마을 ‘태고’에서 20세기의 야만적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의 시간을 기록한 작품이다.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로부터 분할 점령당했던 시기, 1·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과 전후 폴란드 국경선의 변동, 사유재산의 국유화 등 20세기 폴란드의 역사적 사건을 마을 주민의 신화적 삶과 버무렸다. 이 소설은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받았고, 폴란드 니케 문학상의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 부문에 선정됐다. 이달 말에는 ‘방랑자들’이 민음사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토카르추크는 여성의 삶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태고의 시간들’이 국내에 출간될 당시 그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역사 속에서 여성의 자리는 남성의 그것과 비교할 때, 늘 턱없이 부족했다”며 “(‘태고의 시간들’을 통해) 역사라는 것이 일상의 내밀하고 사적인 측면으로도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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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르추크의 책을 번역한 최성은 한국외대 폴란드어과 교수는 “페미니즘 작가인 그의 작품 속에서 여성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묘사될 때가 많다”고 부연했다. 이어 “폴란드 문학의 척박한 환경을 개척했다”며 “작가가 되기 전 심리치료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감과 연민 같은 타인과의 관계처럼 미시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엮어 거대 담론을 만들어 낸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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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르추크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한국문학번역원 주최 ‘2006년 서울, 젊은 작가들’ 대회에 초청돼 방한해 국내 작가들, 학생들과 만났다. 2014년에는 폴란드에서 한강(49) 작가와 대담을 나눈 후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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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는 ‘관객모독’, ‘베를린 천사의 시’ 등 파격적인 작품으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힌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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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오스트리아 페터 한트케

올해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페터 한트케는 전통극 형식에 대항한 희곡 ‘관객모독’(1966)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작가다. 전위적인 문학관과 기존 질서를 향한 도발로 주목받았다. 문단에서는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한트케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붙는 수식어는 ‘전위적’, ‘파격적’이다.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그라츠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1965년 첫 소설 ‘말벌들’을 출간한 뒤 학업을 중단한다. 바로 그해 전후 독일 문학계를 주도하던 ‘47그룹’ 모임에서 거침없는 독설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1966년 대표작으로 꼽히는 ‘관객모독´을 발표해 명성을 얻는다. 전통적인 연극과 달리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거나 무대 위에서 보여 주지 않고 등장인물 4명이 오직 ‘언어’에 집중한다. 배우들은 무대와 객석은 물론 연극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고 관객들에게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현대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한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많은 점도 특징이다. 한트케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오스트리아 케르텐주 그리텐의 소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을 척박한 벽촌에서 보내며 전쟁과 궁핍을 경험했고 성년이 되기까지 국경을 넘어 여러 곳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특히 스물아홉 살 되던 해에 어머니의 자살을 겪는다. 한트케는 1972년 이런 경험을 녹여낸 소설 ‘소망 없는 불행’을 내놓는다. 같은 해 출간한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오스트리아 남자가 종적을 감춘 아내를 찾기 위해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내용의 자전적 소설이다.

1986년 출간한 소설 ‘반복’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1700년 초 농민폭동 지도자로 처형당한 주인공의 조상 이야기, 고향 땅에서 쫓겨나 오스트리아 케르텐주에 사는 가족 이야기, 전쟁 중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해 그가 옛날 공부했던 마리보르의 농업학교 작업노트 한 권과 슬로베니아-독일어 사전을 배낭에 넣고 슬로베니아로 찾아가는 내용을 담았다.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를 비롯해 희곡 ‘카스파’, 예술 에세이 ‘어느 작가의 오후’ 등 지금까지 80여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1987년에는 빔 벤더스 감독과 함께 영화 대본 ‘베를린 천사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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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하웁트만 상, 실러 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프란츠 카프카 상 등 독일의 저명한 문학상을 휩쓸면서 일찌감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거론됐다. 2014년에는 노벨문학상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올해 선택을 받은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매우 감동적”이라는 짧은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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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문학동네)를 번역한 안장혁 동의대 교수는 “워낙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이라 평단에서 비판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주류적 시각에 갇혀 있지 않고 시대를 앞서 실험적인 무언가를 시도했다”며 한트케를 소설 ‘양철북’ 저자 귄터 그라스와 함께 독어권 문학계의 쌍벽이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그러면서 “주류 세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관된 노선과 현대인의 불안을 작품에서 드러내며 그 방식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점을 한림원이 뒤늦게나마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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