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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미궁에 빠진 평양 남북대결...北 개최포기? 벤투호 힘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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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1990년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린 평양 김일성경기장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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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5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남북 대결이 미궁에 빠졌다. 킥오프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북한측이 경기와 관련해 일언반구도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아시아축구연맹(AFC)을 통해 북한축구협회에 경기 개최 관련 질의서를 보내는 등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북한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평양 남북대결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핫 이슈다. 굳게 닫힌 북한의 문이 축구를 통해 활짝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역사적 의미도 있다. 남자축구대표팀이 북한에 건너가 남북 대결을 벌이는 건 지난 1990년 통일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이다.

손흥민(27ㆍ토트넘)과 한광성(21ㆍ유벤투스)의 평양 맞대결은 성사될 수 있을까. 남북 대결 준비 과정과 여러 변수, 성사 가능성 등에 대해 궁금증 5가지를 풀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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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평양 남북통일축구경기 당시 남북 주장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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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①개최 의사 없는 것 아닌가

북한축구협회는 지난달 2일 AFC에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홈 경기 일정을 전달하면서 한국과 맞대결을 10월15일 오후 5시30분에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치르겠다고 알렸다. 지난 5일에는 레바논과 2차예선 첫 경기(북한 2-0승)를 같은 장소에서 진행했다.

남북 대결 TV 생중계와 관련해 북한측이 국내 중계권자인 코리아풀(KBSㆍMBCㆍSBS 컨소시움)과 물밑 협상을 진행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와 관련해 방송 관계자는 “북한 측이 중계권료를 지나치게 높이 불러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벤투호와 맞대결이 여러가지 특수성을 지니는 만큼 북한측이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 북한이 월드컵 예선 홈 경기 개최를 포기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

지난 2008년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과 최종예선에서 잇달아 평양 남북대결이 성사됐을 때 북한이 장소를 바꾼 전례는 있다. 당시엔 북한 측이 ‘남북 관계 경색’을 이유로 일찌감치 홈 경기 개최 포기 의사를 밝혔고, 두 경기 모두 중국 상하이에서 치렀다. 제3국 개최가 미리 결정됐기 때문에 축구대표팀 준비 과정에도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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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여자축구대표팀이 김일성경기장에서 남북대결을 벌여 1-1로 비겼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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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②벤투호가 준비할 시간은 충분한가

통상적으로 축구협회는 원정 A매치를 준비할 때 해당 축구협회와 사전 논의를 거쳐 숙소와 훈련장 후보군을 서너 곳으로 압축한 뒤 경기 2~3주전 현장을 답사해 직접 둘러보고 결정한다. 이를 위해 축구협회는 이달 초 북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평양 남북 대결 관련 정보 공유를 요청했지만 북한측으로부터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지난 16일에는 두 번째 공문을 보냈는데, 이마저도 무응답일 경우 9월 마지막 주에 AFC와 FIFA에 연락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축구협회 관계자는 “현재로선 선수단이 육로나 서해 직항편보다는 중국을 경유해 방북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중국에서 하루 이틀 정도 머물며 중국 내 북한 대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받은 뒤 평양으로 건너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평양에서 북한을 상대한 레바논 선수단도 같은 경로로 이동했다.

중국을 거쳐 방북한다면 중국 체류 비자 또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협회 관계자는 “선수단의 경우 예비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까지 일찌감치 중국 비자를 일괄 신청하는 방식으로 대비할 수 있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면서 “취재진이나 응원단의 경우 (비자 발급) 시간이 촉박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비자는 발급이 오래 걸리기로 유명한데, 심지어 중국은 다음달 1일부터 일주일간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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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평양 남북통일축구 1차전에서 한국의 박종환 감독(왼쪽)과 북한의 명동찬 감독을 필두로 선수단이 15만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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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③벤투 감독 “최대한 늦게 건너간다” 의미는

파울루 벤투(50ㆍ축구대표팀) 감독은 투르크메니스탄전 2-0 승리 직후인 지난 12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다음달 열리는 북한전은 시간이 허용되는 한 최대한 늦게 건너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축구계 일각에서 ‘벤투 감독이 평양 원정과 관련해 뭔가 부정적인 정보를 미리 접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축구협회의 설명은 다르다. 북한이 우리나라와 시간대가 같을 뿐만 아니라 언어나 기후 등 환경 적응에 어려움이 없는 만큼, 굳이 일찍 건너갈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라는 게 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심정적으로는 가장 먼 나라일 수 있다”면서 “우리 선수들이 평양에 머무는 동안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불필요한 압박감을 느낄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겠다는 벤투 감독의 의지로 해석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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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과 맞대결 여부로 관심을 모으는 북한 축구대표팀 공격수 한광성(왼쪽).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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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④북한이 입 닫고 시간 끄는 이유는

북한측이 평양 남북 대결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대화를 중단한 이유를 직접 공개한 적은 없다. 다만 그간 북한 스포츠계의 행보를 감안해 다양한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평양 경기와 관련해 북한 내부적으로 최종 결재가 내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1990년 이후 29년 만에 남자축구 평양 남북 대결이 이뤄지는 만큼, 내용을 꼼꼼히 살피느라 권력 상층부의 ‘도장’을 받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축구의 성지’로 여겨지는 김일성 경기장에서 북한이 한국에 대패할 경우 발생할 후유증을 두려워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2년 전 여자축구대표팀이 같은 장소에서 남북대결(1-1무)을 벌인 예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을 심적ㆍ육체적으로 흔들기 위한 시나리오로 해석할 수도 있다. 2차예선에서는 각 조 1위 8팀과 2위 중 상위 4팀이 최종예선 진출 자격을 얻는다. 북한 입장에서는 조 2위가 현실적인 목표다. 유력한 1위 후보인 한국을 뛰어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괴롭히는 게 유리하다. 시간을 끌며 대한축구협회의 준비 과정을 최대한 흔들고, 선수단 또한 육로 이동 대신 중국을 거치게 해 시간과 체력을 추가로 소비하게 만드는 작전일 수 있다.

Q : ⑤추후 FIFA나 AFC의 징계 여부는

북한의 태도가 상대팀에게 불편을 끼치고 불성실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맞지만, 평양에서 정상적으로 경기가 열린다는 전제 하에 AFC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징계를 포함한 불이익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이 이전에도 스스로 홈 경기 개최권을 반납하는 등 돌발 행동을 보인 적이 있는 데다, 현재로선 북한이 축구를 통해 국제무대와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안팎의 공감대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이 이제와서 갑작스럽게 ‘제3국 개최’ 등으로 방향을 틀 경우 AFC가 월드컵 예선 진행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을 들어 징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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