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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IF] 581년만에 복원된 조선의 최첨단 자동 물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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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20년(1438년)에 만들어진 자동 물시계 '흠경각 옥루(玉漏)'가 581년 만에 복원됐다. 옥루는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이 경복궁에 있는 건물인 흠경각에 설치한 천문시계다. 당시 선진 과학기술이 총동원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남아 있는 유물이 없어 실체를 알 수 없었다. 흠경각은 명종 때 불에 타 다시 만들었다가 임진왜란 때 경복궁 전체가 화재로 타면서 다시 없어졌다. 광해군 시절 창덕궁에 흠경각과 함께 옥루도 재건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국립중앙과학관은 "효종 이후 기록에서도 사라진 옥루를 3년간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복원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물시계에 천문시계까지 결합

세종 시대에는 옥루 4년 전에 만들어진 자동 물시계 자격루(自擊漏)도 있었다. 자격루는 부력(浮力)의 원리를 이용했다. 물이 항아리에 흘러들어 가면 막대가 떠오르고, 쇠구슬을 건드려 떨어뜨린다. 쇠구슬이 인형의 팔과 연결된 지렛대를 쳐 종·북·징이 울린다. 흠경각 옥루는 자격루보다 더 정교해 당시 최첨단 기술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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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경각 옥루는 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와 함께 태양의 변화를 보여주는 천문시계가 결합했다. 시계 외관은 사계절을 보여주는 산과 들을 묘사해 폭·높이가 3.3m의 크기로 제작됐다. 주위엔 가옥과 농사짓는 사람들을 표현한 조형물들도 있다.

산과 평지 아래에는 시계를 작동시키는 기계장치가 숨어 있다. 모두 자동으로 움직인다. 물레방아처럼 생긴 수차(水車)가 물을 받아 일정하게 회전한다. 여기에 연결된 바퀴인 '동력 기륜'은 하루에 한 바퀴 돌면서 지름이 다른 네 가지 바퀴(기륜)가 연결된 축을 회전시킨다. 네 가지 바퀴는 각각의 위치에서 기계장치에 동력을 전달한다. 바퀴들의 윗면 또는 아랫면에는 돌출된 부분(걸턱)이 일정 간격으로 설치됐다. 바퀴가 회전하면서 걸턱이 지렛대를 누르거나 들어 올리면서 인형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자격루보다 복잡한 방식인 것이다.

옥루는 산 곳곳에 설치된 36개의 인형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 시간을 알린다. 먼저 산 아래 평지에서는 '12신 기륜'이 있다. 바퀴가 돌면서 걸턱이 지렛대를 누르면 2시간마다 다른 십이지신(十二支神)·십이옥녀(十二玉女)가 나타난다. 자시(子時·밤 11시~새벽 1시)가 되면 누워 있던 쥐신이 일어서는 식이다. 산 중턱에서는 '시보 기륜'의 걸턱이 통을 들어 구슬을 떨어트린다. 구슬이 지렛대를 누르면 무사의 팔이 움직여 종·북·징을 친다. 종·북·징은 각각 시(時)·경(更)·점(點)을 알린다. 조선시대에 하루는 12간지에 따라 12시로 나눴고, 이 중 밤시간은 5경으로 나눴다. 각 경은 다시 5점으로 나눴다.

산 정상 부분에서도 '사신 기륜'이 회전하면서 옥녀가 1시간마다 종을 울리고, 2시간마다 동물이 시계 방향으로 90도 회전한다. 시간을 세세하게 나눠 알린 것이다. 산꼭대기에서는 '천륜'이 천문시계인 혼천의에 달린 동그란 태양을 시계 방향으로 하루 한 바퀴 돌렸다. 계절에 따라 태양 높이도 달라졌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시간뿐 아니라 계절·날씨를 결정하는 태양의 움직임도 중요했다. 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 박사는 "옥루는 시각의 정밀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당시 농경사회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총동원해 3년간 복원 작업

흠경각 옥루를 복원하는 데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복원에는 고천문학자·고문헌학자·복식사학자·조경사학자·고건축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문헌을 기반으로 당시 천문 관측 장비와 복식, 수목, 건축에 대한 고증을 종합해 원형에 가깝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면 문헌에는 수차의 각 부분 수치를 담은 제원이 남아 있지 않다. 연구진은 장영실이 중국을 방문했고 조선과 중국이 비슷한 기술을 썼다는 기록들을 토대로 당시 중국·대만의 수차 모형을 참고해 옥루의 수차를 복원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옥루는 중국의 수차 동력장치, 이슬람의 구슬을 활용한 인형 구동장치 등 세계 각국의 선진 과학기술을 한국의 농경문화와 자연 철학에 융합시켜 탄생시킨 과학적 기념물"이라고 말했다.

유지한 기자(jhy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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