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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파일] 일본 외교관 "욱일기가 트러블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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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일본 외교부·언론이 했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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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 외교관이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에 한 발언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은 2008년 8월 8일에 개막됐습니다. 개막일로부터 8일 전인 7월 31일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은 베이징에 오는 일본 관광객에게 '안전 지침'이란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이 '안전 지침' 제3항 뒷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쉽게 상기시키는 것들(예를 들면 욱일기)을 게양하면 트러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過去の歷史を容易に想起させるもの(例えば 「旭日旗」)を 揭げるとトラブルを生じる可能性があ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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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 일본대사관이 '안전 지침'이란 책자를 배포하자 일본의 한 언론 매체는 다음 날인 8월 1일 '욱일기는 트러블의 근원'(旭日旗はトラブルのもと)이란 제목의 관련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중국에서는 욱일기가 일본의 중국 침략을 상징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2001년에는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복장으로 패션 잡지에 등장한 여배우 조미(자오웨이)가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中國で 「旭日旗」は日本の中國侵略のシンボルのひとつと考える人が多く2001年には「旭日旗」を思わせるデザインの服裝でファッション雜誌に登場した女優の趙薇さんが嚴しく批判された)는 내용을 별도의 주석을 달아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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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2008년 8월 8일 <로이터> 기자인 오카무라 나오토는 '일본 관광객들이 해군기(욱일기)를 휘날리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다'(Japan fans warned not to fly naval flag)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오카무라 기자는 "주중 일본 대사관이 자국 관광객들에게 욱일기 사용 금지를 경고한 것은 개최국인 중국인들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며 욱일기는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에게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오카무라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당시 주중 일본 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하던 사이토 노리오 씨가 이렇게 대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안전 지침에서 올림픽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에게 오랜 역사의 군기(욱일기)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We explain in a safety guideline for Japanese tourists coming to see the Olympics that the old military flag may cause trouble.")

주중 일본대사관은 일본 외무성의 관리 감독을 받습니다. 따라서 대사관 직원인 사이토 노리오 씨의 답변은 곧 일본 정부의 공식 방침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는 중국에서는 욱일기를 흔들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습니다. '안전 지침'에 욱일기 사용 금지 조항을 집어넣은 것은 욱일기를 사용할 경우 중국인과 마찰이 일어나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위에 거론된 인물 가운데 일본인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즉 주중 일본 대사관 직원이나 일본의 언론 매체들도 2008년 당시에는 욱일기가 아시아인들에게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고 따라서 욱일기 사용이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2019년, 일본은 자신들이 한 말을 망각한 듯 딴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지난 9월 3일 SBS의 질의에 대해 "욱일기가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지 않아 금지 품목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강변했습니다. 최근에 일본 올림픽장관으로 선임된 하시모토 세이코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똑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를 증진하는 지구촌 축제이지, 일본 사람들만 출전하는 일본 전국체전이 아닙니다. 욱일기가 트러블을 일으킨다고 자신들이 말해놓고도 이제 와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구이언'(一口二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만약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는 개최국 중국인들의 반발이 무서워 '욱일기 금지'를 결정했지만 도쿄올림픽은 자신들의 안방이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비겁하고 '후안무치'한 작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러블'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성공 올림픽이 아닙니다. 이는 일본도 원치 않는 사태입니다. '트러블'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길은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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