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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우리 손으로 되살린 해외소재문화재, '옛그림'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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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산시청람도’. 안개 낀 도시와 산촌의 모습을 그렸다. 조선초기 안견의 화풍을 따르는 이른바 안견파 화원화가의 작품으로 보인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품 중 한때 송나라 그림으로 알려진 작품이 한 점 있다. 작품 보관상자에 아오키 마모루(靑木正兒)라는 일본인의 1962년 제발(작품소개 및 감상문)에 ‘중국 송대 이곽파(李郭派) 화풍을 따라 송 화원에서 그린 계거도(溪居圖)’라 돼있었기 때문이다. ‘이곽파’는 중국 오대 북송 초기 화가 이성(919~967)이 시작하고 곽희(1020?~1090?)가 완성한 북방계 산수화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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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한 ‘백동자도’ 병풍. 주나라 문왕의 아들 100명을 주제로 삼은 병풍이다. 장군놀이, 닭싸움, 잠자리 잡기 등 각종 놀이에 여념이 없는 장면을 그렸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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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0년 이후 미국인 수집가인 조지 건드에게 넘어간 이 작품은 중국 것이 아니라 조선 초기 회화인 <소상팔경도> 중 ‘산시청람도’로 인식되었고 조지 건드가 타계한 2013년 이후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에 기증됐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중국 후난성(湖南省) 둥팅호(洞庭湖) 남쪽, 소수와 상수가 합류하는 지역의 경치를 그린 8폭 산수화를 일컫는다. 중국 북송 시대(960~1127) 화가인 송적(1015~1080)의 작품에 기원을 둔 소상팔경도는 고려말부터 조선전기까지 유행했다. 8경 중 하나인 ‘산시청람(山市晴嵐)’은 산간과 도시에 아른거리는 안개 혹은 화창한 날의 아지랑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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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로텐바움 박물관에 소장된 ‘자수 화조도’ 병풍. 구한말과 대한제국시대 독일주재 조선영사로 활동한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드 마이어가 수집한 작품이다. 자수 8폭 병풍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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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산시청람도’는 화면 오른쪽에 산수와 경물이 치우쳐 있는 편파구도가 나타나며 산의 바위를 짧은 선과 점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묘사하는 단선점준(조선 초기 산수화에 쓰인 준법의 하나로 짧은 선이나 점으로 산악·암석 등의 입체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 전기의 소상팔경도나 계회도(계모임을 그린 그림), 사시팔경도(사계절의 경치를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산수화) 등에 보이는 이른바 안견파 화풍의 특징이다. 조선초기 안견파로는 석경(생몰년 미상), 양팽손(1480~1545), 신사임당(1504~1551) 등이 꼽힌다. 클래블랜드 미술관 소장품은 안개낀 도시와 산촌의 모습을 통해 이 작품이 여말선초에 왕성하게 제작된 소상팔경도 중 ‘산시청람’임을 알 수 있다. 구도나 경물 배치 등에서 현전하는 조선초기 산시청람도와 유사한 이 작품은 건물과 인물의 세부 묘사와 산수를 그린 필치가 뛰어나다. 제발이나 낙관이 없어 화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안견파 화풍을 따른 조선 초기 화원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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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소장품인 ‘표작도’. 소나무와 표범, 까치를 그린 민화다. 종이를 오려 장황을 꾸몄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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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17년 문화재청 산하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지원공모에 선정돼 지난 2년간 국내서 보존처리됐다. 소장 중 변형된 형태의 장황(그림을 족자·병풍·책 등의 형태로 꾸밈)을 제거하고 한국전통방식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이 ‘산시청람’ 등 해외기관이 소장한 한국 유물 중 국내에 들여와 보존처리를 마친 유물들을 국내관객들에게 공개하는 ‘우리 손에서 되살아난 옛 그림’ 특별전을 11일부터 10월13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다. ‘국외문화재 소장기관 활용 지원 사업’의 하나로 국내에 들어와 보존처리를 마친 후 다시 국외 소장처로 돌아가기전 복원된 모습을 잠시 선보이는 특별전이다. 모두 12점이 출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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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이 소장중인 홍재만의 서화작품. 20세기 초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근대서화가의 작품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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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백동자도’ 병풍도 새롭게 개장된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백동자도’는 화려한 전각이 있는 정원에서 놀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모습을 그린 총 10폭의 병풍이다. ‘주나라 문왕이 낳은 100명의 아들’을 주제로 삼은 그림이다. 조선시대에는 효종(재위 1649~1659)이 중국 화가 맹영광(1590~1648)으로부터 백동자도를 헌상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후기에 ‘백동자도 병풍’은 여성과 아이의 공간을 장식하는데 사용됐다. 조선시대 ‘백동자도’는 중국 복식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전각을 배경으로 각종 놀이를 하고 있는 정형화한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백동자도’는 장군놀이, 닭싸움, 잠자리 잡기, 새놀이(낮잠), 물놀이(연꽃따기), 관리행차, 양 타기, 개 놀이, 원숭이 놀이, 매화따기 장면 등을 담고 있다. 각 장면들은 다남(多男)을 기원하는 풍습이나 입신양명을 뜻하는 역할놀이, 그리고 각 계절의 평안과 번영을 상징하는 풍속을 담고 있다. 차미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 1팀장은 “미술관이 이 작품을 구입할 당시 5폭씩 한 쌍의 병풍으로 잘못 장황되어 있었다”면서 “이번 복원은 원래 형태인 10폭 병풍으로 되돌리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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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빅토리아엘버트박물관 소장 ‘자수 화초길상문’ 병풍.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길상무늬 화분과 화병에 담은 수십종의 꽃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정재무의 노랫말 글씨를 수놓은 작품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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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로텐바움 박물관의 ‘자수화조도’는 궁중화조도 양식의 화조도를 수본(수를 놓기 위하여 그린 그림이나 본을 떠놓은 모형)으로 해서 제작한 자수 8폭 병풍이다. 흰색 바탕 위에 다양하게 염색한 실로 각 폭마다 모란·매화·석류·단풍 등의 꽃·나무와, 한쌍을 이룬 공작·꿩·봉황·오리 등의 새를 조화롭게 배치했다.

이 작품은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트 마이어(1841~1926)의 컬렉션에 포함돼 있었다. 함부르크 출신 상인인 마이어는 1883년(고종 20년) 제물포에 세창양행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했고, 1886년(고종 23년) 독일 주재 조선영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1905년까지 조선영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수준높은 한국유물을 수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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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초상화’. 19세기 화승이나 지방화가들이 그린 초상화로 여겨진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제작 당시의 장황을 유지한 이 병풍은 현재의 방식 그대로 유지했고, 찢어짐과 오염 등 손상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자수 화초길상문’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길상무늬 화분과 화병에 담은 수십종의 꽃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정재무(呈才舞)의 노랫말 글씨를 수놓은 병풍이다. 총 8폭 중 4폭만 남았고 낱폭으로 전하는 것을 병풍 형태로 복원했다. 이밖에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품인 ‘초상화’는 19세기 후반 화승(畵僧)이나 지방화가가 그린 초상화로 상정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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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소장 ‘난초도’.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작품이다. 검은 비단에 금색안료로 그렸다. 기존의 장황과 배접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글씨가 드러났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소장 작품인 ‘표작도’와 ‘난초도’도 공개된다. ‘표작도’는 소나무와 표범, 까치를 그린 민화이며 종이를 오려 장황을 꾸몄다. 흥선대원군의 작품인 ‘난초도’는 검은 비단에 금색안료로 그렸다.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구리 성분의 안료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기존의 장황과 배접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글씨가 드러났다. 족자축에서 쓰여진 연필글씨는 일본어로 ‘모리카와 사마’였다. 한때의 소장자 이름으로 추정된다.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20세기 추반 혁필화(가죽 붓 그림) 5점은 홍재만·송염조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근대 서화가들 작품이다. 장황없이 전해지던 것을 이번에 보존처리를 거쳐 족자형태로 갖추었다.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의 보존·복원사업을 통해 유물들이 더 안정적으로 보존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애쓸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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