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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입으로만 정의 외치는 정치인, 구호를 창의·다양성으로 바꿔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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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미래탐험대 100] 미탐100 다녀온 청년들의 제안

한국 정치는 편가르기 정치, '진보냐 보수냐' 틀에 가두지 맙시다

모범생뿐만 아니라 모험생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나라됐으면…

코딩교육 좋지만, 의무화보다 학생들에게 선택권 주면 좋겠어요

요즘 20대가 불공정에 좌절하고 분노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청년들의 생각은 어떨까. 조선일보가 창간 100주년(2020년 3월 5일)을 앞두고 청년 100명을 세계 각지로 보내는 '청년 미래탐험대 100'(미탐백)에 참가한 20대 6명이 한자리에 모여 생각을 나눴다. 미탐백은 절반 지점을 지나 지금까지 청년 54명이 탐험을 완료했다.

미국의 젊은 정치 문화를 체험하고 온 김홍균(22), 에콰도르 아마존 원주민을 만나고 온 양유경(27), 네덜란드 로테르담 무인 자동화 항구에 다녀온 성정욱(27), 정부가 최저임금을 정하지 않는 아이슬란드를 탐험한 이승주(20), 미국의 군인 예우 문화를 보고 온 김유나(21), 미국 시애틀의 컴퓨터 교육을 체험한 옥선교(23)씨가 참석했다.

◇"우리를 '공정'의 틀에만 가두지 마라"

김홍균(이하 홍)=미국에서 제 또래 민주당 소속인 애를 만났어요. 그런데 제일 친한 친구가 공화당 소속이래요. 중학교 때부터 토론을 해오면서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고 해요. 우리는 정치 성향을 밝히면 바로 한 인간을 보수·진보라고 낙인찍잖아요. 정치 이야기 잘못 꺼내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가 되기도 하고 편이 갈려버리죠.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삶 전체를 이념과 엮어버리거든요.

김유나(김)=진보 혹은 보수라 해도 이슈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너 진보야? 그럼 운동권이네' 이런 식으로 '너'를 낙인 찍어 버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선일보

조선일보 100주년 프로젝트 ‘청년 미래탐험대 100’을 통해 해외 각지에 다녀온 청년들이 최근 서울 중구 조선일보에서 만나 ‘우리가 원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이들은 “더 많은 선택권과 다양성이 보장된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홍균·양유경·성정욱·이승주·김유나·옥선교 탐험대원.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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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유경(양)=기성세대가 자꾸 저희를 규정지으려 한다고 많이 느껴요. 최근엔 20대가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분노하고 있다는 분석을 자주 봅니다. 글쎄요… 공정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까요? 오히려 공정이란 단어 하나로 틀을 정해버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 '나도 지키니까 너도 지켜' 이런 것? 사실 그건 제한적이잖아요. 그게 무슨 목표가 될까요? 정치인들이 주로 공정·정의를 많이 내세우죠. 저는 다양성·창의성·모험이 보장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는데, 그건 안 될 것 같으니 '공정이라도 하자고'라며 강요하는 느낌이에요.

이승주(이)=저도 동의해요. 우리 사회에선 너무 많은 것을 강요당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지금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요, 아이슬란드는 최저임금을 정부가 정해주지 않더라고요. 회사와 근로자가 자율적이고 유연하게 정해요. 한국은 최저임금을 정부가 정해버리고 이것조차도 정치 이슈가 되어서 정부안에 찬성하면 좌파, 반대하면 우파 이렇게 규정이 되어버리다 보니깐 토론도 제대로 안 이뤄지는 것 같아요.

◇"선택권·다양성을 원합니다"

옥선교(옥)=저는 미국 시애틀의 코딩 교육 현장을 탐험하고 왔는데요, 제일 부러웠던 것은 중학교 때부터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우리는 사실 국·영·수·사·과, 심지어 음악까지 똑같은 과목을 배우잖아요. 저는 코딩을 배우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사회가 밀어주는 시스템, 그게 미국의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컴퓨터가 중요하다니까 얼마 전 갑자기 초·중학교에 코딩 교육을 '의무'로 넣어버렸죠. '코딩을 배울 수 있다'는 선택권을 주는 것과 '코딩을 무조건 배워야 한다'고 의무화해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성정욱=한국은 선택권만큼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다녀온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선 삼성SDS와 네덜란드 ABN암로 은행, 로테르담 항만청 등이 머리를 맞대고 블록체인 기반 무역 플랫폼을 연구하고 있었어요. 이 나라에선 아이디어가 있으면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게 일상이래요. 종교·신념·인종·성별은 따지지 않고요. 저희 세대가 기성세대와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은 나와 다르더라도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김=저는 미국 참전 용사들을 위한 감사 편지 쓰기 캠페인을 했어요. 미국·중국인 친구가 같이 저에게 와서 6·25전쟁에 관해 말을 걸더라고요. 신기했어요. 한국·일본인 친구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같이 견학 가는 식이랄까.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지적하고 되돌아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세대부터는 다른 나라 누구와도 손잡고 좋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고 싶어요.

옥=분노나 적개심보다는 긍정과 패기를 더 갖추고 싶어요. 시애틀에서 만난 또래는 학자금 대출도 쌓였고 매달 100만원 가까이 월세를 내는 상황인데도 '난 원하는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고 빚도 다 갚을 거야'라고 자신만만하더라고요. 그 친구의 그런 패기가 부러웠어요. 젊은이에게도 보다 다양한 길이 열리길 꿈꿉니다. 모범생만 만들어내는 나라 말고, 모험생도 인정받는 그런 사회 말이죠.

["화끈하게 추진하는 역동성만큼은 한국이 최고"]

청년 미래탐험대 100 프로젝트로 해외에 다녀온 대원들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앞선 점도 분명히 있더라고 했다. 에콰도르에 다녀온 양유경 대원은 '뭐든지 빨리빨리 화끈하게 추진하는 역동성'만큼은 한국이 앞선 듯하다고 했다. "일회용품 쓰레기 문제가 불거지니깐 순식간에 스타벅스 매장에서 플라스틱 컵과 빨대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많은 것이 느리게 진행되는 남미에 다녀오니 알겠더라고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의 부작용도 많지만 새 제도를 신속히 흡수하고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은 우리가 뛰어나다는 사실을요."

미국에 다녀온 김홍균 대원은 그곳 청년들이 투표하기 편리한 한국의 선거제도를 부러워하더라고 했다. "미국은 선거를 하려면 등록 절차가 복잡할 뿐 아니라 투표일이 휴일도 아니더라고요. 이런 제도가 갖춰진 만큼 우리 청년들도 앞으로는 보다 적극적으로 선거를 통해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덜란드에 다녀온 성정욱 대원은 "탐험 자료를 모으고 현지인 섭외를 하면서 우리 청년들의 디지털 역량이라면 세계 어디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미래탐험에서 용기를 얻어 얼마 전 친구들과 무역회사를 창업했다"고 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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