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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가슴으로 읽는 동시]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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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서정주(1915~2000)

밝다, 환하다, 풍성하다, 즐겁다, 정겹다. 무엇이? 달밤이, 마당이, 웃음이, 노루와 올빼미가, 송편 빚는 식구가. 휘영청 달 밝은 마루에서 달빛과 웃음과 수다까지 섞어서 송편을 빚는 이 추석 풍경! 참 넉넉하고 여유롭게 다가온다. 한가위가 그려낸 풍경화다. 달빛에 꽃가지가 휘어진, 달도 깔깔 웃는 풍경화다. 옛날은 이랬다. ‘그리운 옛날’이라고 하면 너무 낭만적일까. 가을과 풍요의 상징이었던 추석 풍경이 오늘날은 어딘가 고단해 보인다. 정감의 물기가 말라 보인다. 추석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이니. 생활의 얼개가 너무 촘촘해서일까. 삶이 고달프고 팍팍해서일까. 좋은 풍경화가 시드는 것 같아 아쉽다. 올 추석에는 만남이 부드럽고 정겨운 그림 한 폭을 그려봄이 어떨는지. 달빛이 마음마당을 더 환히 밟아 오게.

[박두순 동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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