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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퇴직금 일부 국민연금 전환? 무엇을 위한 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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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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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증가와 보험료율 인상을 핵심쟁점으로 국민연금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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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노후소득보장특별위원회(경사노위)에서 진행하고 있다. 핵심쟁점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증가와 이를 위한 보험료율 인상이다. 노동계는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되 보험료율은 노사가 0.1%씩 10년에 걸쳐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재계는 보험료율이 조금만 올라도 기업에 직격탄이 된다며 현재 노사가 각각 4.5%씩 부담하는 보험료율과 40%인 소득대체율의 현행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경사노위 연금특위에서 한국경총은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인 김용하 교수(순천향대)가 제안한 '퇴직금 전환제'(기업이 법정 퇴직금으로 적립하는 8.33%(연봉의 한 달 치 혹은 12분의 1) 중 3%포인트를 떼어 국민연금 보험료로 전환하는 것)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이라 수용하기 쉽지 않지만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퇴직금 전환제를 시행하면 현재의 퇴직적립금은 8.3%에서 5.3%로 낮아지지만,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2%로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한마디로 재계는 어차피 내는 법정 퇴직금 일부를 국민연금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국민연금 개혁을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퇴직금은 후불적 임금 성격



퇴직금 전환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과거 이런 제도를 시행한 적(1993년 1월~1999년 4월)이 있어 낯선 제도도 아니라는 주장도 한다. 그런데 과거 퇴직금 전환제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에둘러 가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는 퇴직금 수급권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았고 퇴직연금제도는 아예 논의도 없던 때였다. 하지만 현재 퇴직연금제도는 수익률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퇴직적립금에 대해 자산운용(확정급여형은 회사책임, 확정기여형은 근로자 책임)을 하고 있다.

이는 재산상의 이익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퇴직적립금 전환제를 검토하기 전에 이 문제를 먼저 따져 보아야 한다. 만약 재산상의 이익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근로자에게 있다면 퇴직적립금을 국가가 임의로 공적연금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 쓴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는 것이다.

퇴직적립금의 법적 성격을 따져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퇴직적립금의 성격을 규명하는 설은 몇 가지가 있다.

① 임금후불설은 퇴직금이 기본적으로 근로자에게 지급되지 않고 있던 임금을 퇴직 시에 사후적으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퇴직금은 근로조건의 일환이며, 퇴직금은 근로자의 당연한 권리로서 퇴직의 사유와 관계없이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 공로보상설은 장기간의 계속근로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퇴직 시에 사용자가 은혜적으로 증여하는 급여라는 견해이다.

③ 생활보장설은 근로자가 퇴직한 후 생활이 보장되도록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급여라는 학설이다.

그런데 퇴직적립금을 위 세 가지 중 어떤 성격에 바탕을 두고 국민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 알기 힘들다. 법원 판례는 임금후불설 입장을 취하고 있다. 후불임금이기 때문에 회사는 근로자의 퇴직사유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퇴직금을 지급해야만 한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의 퇴직금제도는 근로자가 1년 이상의 기간 계속 근로를 제공하고 퇴직할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 제공에 대한 임금 일부를 지급하지 아니하고 축적했다가 이를 기본적 재원으로 하여 근로자가 퇴직할 때 이를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서, 퇴직금은 본질적으로 후불적 임금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고 판시했다. 기업이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는 퇴직금을 회계장부에 부채로 계상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국민연금 생명 연장 고작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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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전환제를 근로자들이 받아들인다고 해도 국민연금 고갈을 6년 정도 늦출 뿐이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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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백보 양보해 퇴직금 전환제를 근로자들이 받아들인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 퇴직적립금 3%를 전환해서 보험료율을 12%로 올리더라도 소득대체율 45%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고갈은 2057년에서 2063년으로 6년 정도 늦추는 것에 불과하다고 전해진다.

결국 퇴직적립금에서 3%를 떼도 ‘국민연금 생명 연장의 꿈’은 고작 6년밖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 속도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반영해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도출하였는지를 따지는 것은 본 칼럼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현재의 극초저출산(합계 출산율 1명 이하) 추세를 봤을 때 그 시기가 아마도 빨라지면 빨라지지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3층 복지제도는 서로의 보완관계를 전제하는 것이지 대체관계로 변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뭇 존재 이유가 다르다는 의미다.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 중에는 형편없이 낮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들기도 하는데, 이는 투자문화의 부재 때문이지 제도의 부실 탓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이 세계적인 기금들보다 낫다면 모르지만.

퇴직금 전환제 문제를 계기로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반성과 퇴직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대변할 방안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진다. 퇴직적립금을 국민연금으로 일부 전환하자는 논리는 견강부회(牽强附會)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성일 한국연금학회 퇴직연금 분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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