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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단독][통제받지 않는 권력과 그늘]③정권이 바뀌어도 검사님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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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8년6월 국가인권위가 이모씨가 제기한 진정사건을 기각하면서 보낸 통지문. 이씨는 검사가 20일간 독방구금에 면회와 서신을 전면 금지하고 조사과정에서 수시로 인격을 모욕했다고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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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검사를 협박한 혐의로 구속된 후 20일간 가족들과 면회까지 차단당한 채 독방에 수용됐던 30대 사업가 이모씨(경향신문 8월20일,8월21일 보도)에게 헌법상 불가침의 기본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씨는 1심 선고를 앞두고 국가인권위와 법무부에 수사검사의 가혹행위를 하소연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검사의 더 강해진 ‘으름장’뿐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검사 협박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씨에게 검사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특권계급이었다.

21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이씨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던 2017년 3월 무렵이었다. 검찰로 구속송치된 후 인천지검 강력부 ㄱ 검사로부터 5차례 피의자신문을 받으면서 당했던 일들을 처음으로 외부기관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씨가 속으로만 삭여왔던 부당한 인권침해행위를 외부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씨는 재판과정에서 선처를 기대하며 범행사실도 순순히 자백하고 최대한 수사에 협조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ㄱ검사의 생각은 달랐다. ㄱ 검사는 이씨가 ㄴ검사에게 협박문자를 보낸 것은 인간적 배신감이 아니라 오로지 가학적 심리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몰고 갔다. 결국 ㄱ검사는 1심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이 없다’며 징역3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더 이상 검사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이씨도 이때부터 검사로부터 당한 일을 서면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진정서에서 “ㄱ검사가 피해자인 ㄴ검사와 인천지검 강력부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이자 후배라는 특수관계로 공정성이 훼손된 수사진행을 하면서 인격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ㄱ검사가 동료검사의 비위행위가 외부로 새 나가지 않기 위해 20일간 자신을 독방에 가두고 면회나 서신까지 차단한 사실과 이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피해도 설명했다. 실제로 이씨는 ㄱ검사의 접견·교통권 전면제한으로 회사에 아무런 업무지시를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긴급체포전 진행하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사정도 설명할 수 없어 거래처로부터 사기죄로 고소를 당하고 무더기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이씨는 구치소 안에서 정리한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와 법무부에 각 1부씩 보내고 동생을 통해 국민신문고에도 올리게 했다. 당시 검사의 부당한 인권침해를 하소연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씨는 세상과 단절된 구치소 안에서 재소자가 현직검사를 상대로 인권침해 주장을 하며 싸움을 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1심 선고공판전에 국가인권위나 법무부에서 자신의 억울한 사정에 대해 조사를 해주길 기대했던 이씨의 희망은 애당초 ‘신기루’에 불과했다.

이씨가 진정서를 제출하고 3개월쯤 후에 구치소로 국가인권위 조사관이 찾아왔다. 그때는 이미 1심에서 징역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고 항소심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조사관과 면담은 30분정도 진행됐다. 이씨는 조사관의 태도에서 이미 검사와 싸울 의지가 없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사관은 진정서에 적은 내용을 간단히 확인하더니 ‘ㄱ검사와 피해자인 ㄴ검사가 특수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묻더라고요.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안가요. 검사의 폭언이나 인권침해행위는 더 이상 묻지 않았어요. 조사관은 대신 ‘검사가 자료 제출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했어요. ‘조사는 빨라야 6개월 정도 걸릴 거고 그 이상 길어질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어차피 1~2개월 후면 만기 출소하니 공연히 검사 자극하지 말고 진정을 취하하라는 취지였지요”

인권위 조사관이 다녀가고 난 후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검사는 이씨가 겉으로 반성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ㄴ검사에 대한 보복을 이어가고 있다며 인권위 진정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ㄱ검사는 재판부에 “피고인의 진정이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기 위한 차원인지 아니면 진정을 구실로 삼아 피해검사의 실명을 외부에 거론하고 그로인해 추가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인지 참작해주기 바란다”고 최종의견을 밝혔다. 물론 변호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씨의 국선 변호인은 “단순한 다른 협박사건에 비해 피해자가 검사라는 이유로 다소 과하게 수사가 되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고 피해검사도 이번 사건에 대해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반대주장을 폈다. 하지만 법정 분위기는 이씨에게 유리하게 흐르지 않았다.

결국 공판이 끝나고 이씨는 변호인과 상의 끝에 인권위에 제기한 진정을 취하했다. 인권위 조사관 태도로 봤을 때 결과도 뻔히 예상이 됐고 공연히 검사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무부와 국민신문고에 보낸 진정도 소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씨의 진정서는 대검찰청을 통해 인천지검으로 내려 보내졌고 ㄱ검사에게 사건이 배당됐다. ㄱ검사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제기한 진정이 당사자에게 배당이 됐으니 결과는 뻔했다. 이씨는 법무부와 국민신문고에 제기한 진정도 취하했다.

경향신문은 ㄱ 검사에게 어떻게 진정사건이 가해자로 지목된 검사 본인에게 배당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 검사는 “원래 사건과 관련해서 민원인이 불만이나 불복을 제기하면 해당검사한테 배당을 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검찰사무규칙등에 이 검사가 주장하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2017년 6월말 이씨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실형선고를 면하긴 했지만 1심 선고형량(징역6개월)의 형기를 딱 2주정도 남기고 출소한 것이다. 이씨는 출소후 악몽 같았던 과거 일을 잊고 새 출발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업무를 수습하고 거래처에서 제기한 고소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처리하면서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씨는 2018년1월 국가인권위에 재진정을 했다. 2004년 인권위가 15일간 피의자에 대한 전면적인 접견·교통권 제한은 과도한 인권침해라며 대검에 시정권고를 한 사실을 진정서에 담았다. 이씨 입장에서는 20일간 접견·교통권을 제한당한 만큼 과거 사례와 비교해봐도 당연히 인권위가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으로 기대했다. 더구나 검사가 20일간 독방에 가두고 면회와 서신을 금지한 주요 사유가 동료검사의 약점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2004년 사례보다 더 중대한 직권남용에 해당된다고 봤다.

경찰수사관 5명이 2017년1월 밤10시에 집에 들어와 컴퓨터와 핸드폰을 압수하고 긴급체포하는 과정에서 검사가 공식지휘라인을거치지 않고 사적으로 외압을 행사한 다수의 정황 증거도 파악했다. 마음 한켠엔 박근혜정권 시절과 달리 검찰개혁을 강조하는 문재인정부의 국가인권위는 뭔가 다른 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이씨가 진정서를 제출하고 한 달쯤 지나 인권위 조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사관은 “진정서를 아주 잘 정리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 말이 이씨를 불안하게 했다. 조사관은 “검찰과 경찰이 답변서에서 진정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강제로 조사할 방법이 없다”며“우리는 양측에서 제출된 서류만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진정서를 제출하고 6개월쯤 지난 2018년6월 국가인권위는 이씨의 진정을 기각한다고 통보했다. 이씨를 더 맥 빠지게 한 건 인권위가 밝힌 기각사유였다. 인권위는 ㄱ 검사가 이씨를 20일간 독방에 가두고 가족들까지 포함해 면회와 서신을 전면금지해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에 대해 “진정인의 증거인멸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고 했다. 2004년 15일간 접견·교통권 제한을 과도한 인권침해로 판단했던 인권위가 20일간 접견·교통권 제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면회와 서신금지의 주요 사유가 동료검사의 약점 노출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았다.

ㄱ검사의 폭언 혐의에 대해서는 “검사가 피의자 조사중 진정인의 인격을 침해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검사가 피의자 신문 도중 ‘악마의 본성’을 언급한 것을 인정했지만 인권위는 피의자를 ‘악마’로 지칭한 것을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피해자진술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한지 불과 30분 만에 긴급체포가 이뤄진 점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별다른 의심을 제기하지 않았다. 인권위는 “피해검사의 신고에 따라 경찰이 출동하여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 진정인을 긴급체포한 것이 수사상 현저히 부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취재결과 인권위가 검사의 인권침해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하는 근거가 됐던 검찰과 경찰의 답변서는 상당부분이 허위사실을 담고 있었다. 특히 ‘피의자 신문당시 속기사와 수사관이 항상 참여하고 있어 폭언을 할 수 없었다’는 ㄱ검사의 답변은 정보공개청구 결과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2017년2월13일 4회 피의자신문조서 작성 당시 수사관의 전자입출입 기록을 보면 수사관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ㄱ 검사는 이씨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씨의 긴급체포 경위도 마찬가지다. 인천광역수사대는 “긴급체포는 피해검사가 2017년1월24일 오후7시 직접 광수대를 방문해 피해신고를 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당시 이씨의 긴급체포를 지휘했던 수사팀 팀장은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ㄴ검사가 직접 피해 신고를 하지는 않았다”고 실토했다. 경향신문이 피해자 진술조서를 확인한 결과도 사건 당일 광수대에 출두해서 피해자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사람은 ㄴ검사가 아니라 그의 배우자였다. 인권위에 제출된 답변서를 작성한 ㄷ경사는 ‘검사가 직접 피해신고를 한게 맞느냐’는 경향신문 질문에 “나는 체포과정에 간여하지 않아 잘 모른다”고 했다.

인권위가 체포과정에 참여도 하지 않은 경찰관의 답변서를 토대로 ‘긴급체포는 적법했다’고 면죄부를 준 셈이다.

결국 국가인권위는 검·경의 인권침해를 조사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검찰과 경찰이 불러준 대로 결론을 낸 것이다.

이씨는 “정권이 교체됐다고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며“검사가 스스로 자백하지 않는 한 검사의 인권침해 행위로부터 피의자의 권리를 보호해줄 국가기관은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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