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국인 한국·중국·필리핀을 상징하는 소녀 셋이 손을 맞잡고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향하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1991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한 김학순 할머니가 이 소녀들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모습의 ‘위안부 기림비’.
그동안 있었던 의자에 앉아 있는 평화의 소녀상과 다른 모습의 기림비가 2017년 9월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공원에 세워졌다. 미국 내 일제의 ‘위안부’ 피해를 본 나라 교민 13개 커뮤니티가 2년여 동안 공동모금해 세운 이 기림비는 미국 대도시에서는 처음 세워져 그 의미를 더 했다.
기림비가 세워지기까지 과정이 순탄했을까? 누구나 예상하듯 기림비를 세우기까지, 그리고 세우고 나서도 일본의 방해는 거셌다. 한 예로 샌프란시스코시와 오랜 기간 자매결연해온 일본 오사카시가 자매결연을 파기하겠다고 협박하며 철거 요구를 거듭 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위안부’ 기림비에 대해 “피해자들은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위안부’ 기림비는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교훈과 사실을 일깨운다”고 말하며 기림비를 지켰고, 오사카시는 자매
결연 파기를 정식 결정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이런 협박과 자매결연 파기라는 일본의 초강수에도 굽히지 않고 왜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승인하고 유지하고 있을까? 기림비와 함께 설치된 동판에는 “… (침묵을 깨고 용감하게 증언한) 이들은 성폭력을 전쟁의 전략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반인륜 범죄에 해당한다는 세계적인 선언을 끌어냈다. 이 여성들과 전 세계에 걸친 성폭력 및 성을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 근절 노력에 이 기림비를 바친다”라고 쓰여 있어서 ‘위안부’ 이슈가 비단 피해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렇다. ‘위안부’ 이슈는 피해국과 가해국을 넘어 온 인류의 이슈다.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와 성폭력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재진행형 이슈다.
그렇게 국제사회, 시민사회가 연대해 세운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가 지난 14일 ‘위안부’ 기림의 날에 일제의 정신적 침략을 상징하던 남산 조선신궁 터 부근에도 세워져 공개됐다. 이 ‘위안부’ 기림비는 샌프란시스코 교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었고 서울시가 기증 받아,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정의기억연대가 공동으로 기림비 설치 사업을 시작했다.
기림비를 기증한 김진덕·정경식재단의 김한일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투쟁, 용기를 기억하며 평화와 정의를 기원하는 서울 기림비가 샌프란시스코 기림비와 함께 인신매매와 성폭력 근절을 일깨우는 상징물로, 후세대들의 인권 의식을 높이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설치된 기림비는 일명 ‘삼순이(드라마) 계단’ 앞에 있어 시민들이 일상적 공간에서 ‘위안부’ 문제에 더 쉽게 다가서고 기억할 수 있게 됐다. 기단 없이 동상이 땅을 딛고 있도록 해 시민 눈높이에 맞추고, 손을 잡은 세 소녀상 한쪽을 비워 시민 누구나 손을 맞잡아 채움으로써 완성되도록 제작했다. 기림비를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소통하고, 과거와 현재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주변에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과 함께 안중근의사 기념관, 한양도성 현장유적박물관 등이 있어 초·중·고등학생들의 역사 교육마당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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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정의기억연대는 앞으로 온라인 방명록을 만들고, 큐아르(QR)코드를 붙여 기림비에 대한 상세한 스토리를 전달할 계획이다. ‘위안부’ 추모공원인 ‘남산 기억의 터’와도 연계해 시민 참여 역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최근 <김복동> <에움길> <주전장>과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일본계 미국인이 만든 <주전장>을 보면 일본은 일본 교과서에서 위안부 역사를 모조리 삭제하고, 전 세계에 왜곡된 정보를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다 한들 역사적 사실이 지워질 수 있을까.
그들이 지우고 싶고 가리고 싶어 하는 만큼, 기억하고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의 소녀상 전시 중단에 맞서 ‘소녀상되기 운동’에 세계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동참하는 것이나, 이번에 샌프란시스코 교민 힘으로 남산에 ‘위안부’ 기림비를 설치한 것처럼 말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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