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文대통령, "지지 않겠다"던 2주전과는 달리 메시지 수위 조절
◇反日은 자제… 과거사 직접 언급 안 해
문 대통령은 이날 "국제 분업 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며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강조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비판한 발언이지만, 일본을 콕 짚는 대신 자유무역주의, 동아시아 협력이라는 우회적 표현을 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동아시아'라는 표현을 '일본'보다 많은 15차례나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 극일(克日)'을 강조하며 "일본의 부당한 수출 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 있는 경제 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 힘으로 분단을 이기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책임 있는 경제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고, 일본을 동아시아 협력의 질서로 이끄는 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일제 강제징용,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구체적인 과거사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 협력을 지속해왔다"며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 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고 했다. 역대 일본 정부의 과거사 문제 해결 노력도 일부 거론한 것이다. 특히 오는 24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시한을 앞두고 '안보 협력'을 언급한 것은 지소미아 연장 여부 결정에 앞서 재차 대화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이웃 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바란다"고도 했다.
◇도쿄올림픽에 의미 부여
문 대통령은 이날 "세계인들이 도쿄올림픽에서 우호·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며 내년 도쿄올림픽의 의미도 강조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묶어 "사상 최초의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이라며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도쿄올림픽을 굳이 거론해 일본에 우회적 압박을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일부 있지만, 최근 여권 일각에서 거론한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 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길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 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반일 메시지를 자제하고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은 다음 주 베이징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 등 향후 양국 외교 채널 가동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적 해법 모색에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려는 뜻으로도 보인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번 경축사는 딱 '양국 대화 창구가 열려있다'는 의미 정도"라고 했다.
[안준용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