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디어 사업가 탓소 베넷 "예술작품이 검열당하는 건 모순"
탓소 베넷 |
이달 초 일본 아이치(愛知)현의 국제예술제인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가 일본 내 우익 세력의 항의를 받고 전시를 중단한 '평화의 소녀상'을 스페인의 한 미디어 사업가가 사들였다.
14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미디어 기업 미디어프로(Mediapro)의 공동 설립자인 탓소 베넷(62·본명 호세프 마리아 베넷 페란)씨가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전시가 중단된 소녀상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베넷은 내년 초 자비를 들여 바르셀로나에서 개관하는 '자유 미술관'에 소녀상을 전시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일본의 전시장에서 쫓겨난 소녀상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고 썼다.
베넷이 사들인 소녀상은 부부 작가 김서경·김운성씨가 제작한 작품으로서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1일 아이치트리엔날레가 개막과 함께 전시했지만 일본 내 우익 세력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정치인들까지 압력을 넣자 사흘 만에 트리엔날레 측이 전시를 포기했다.
카탈루냐 출신인 베넷은 신문기자로 출발해 1980년대 방송 프로듀서로 전직했으며, 1994년 미디어프로를 동업자들과 공동 설립했다. 그는 미디어프로를 운영하면서 영화 제작, 스포츠 판권 사업을 하며 큰돈을 모았다. 일간 '엘 문도'에 따르면 베넷은 2억6000만유로(약 3530억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스페인의 미디어 사업가 탓소 베넷이 사들인 '금지된 미술품'들. 왼쪽부터 일본 아이치비엔날레 2019에 출품됐다가 전시가 중단된 '평화의 소녀상', 중국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작품(베넷이 구매한 것과 유사한 작품의 사진임). /연합뉴스·스미스소니언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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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넷은 스페인 언론 인터뷰에서 "소녀상이 트리엔날레 전시에서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할 수 있는 루트를 수소문해 지난주 사들였다"고 말했다.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작년 초부터 전 세계에서 정치적·종교적 이유 등으로 전시가 금지된 예술 작품을 수집해 약 60점을 모았다"며 "모두 내년에 개관할 '자유 미술관'에 영구 전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예술작품이 검열당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한 그는 예술품 검열과 관련한 각종 자료도 함께 전시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상 외에도 베넷은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작품과 미국 화가 일마 고어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누드로 그려 조롱한 그림을 사들였다. 아이웨이웨이의 작품들은 중국 내에서는 전시가 금지돼 있고, 일마 고어는 트럼프의 누드화를 그렸다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 이 외에도 지난해 마드리드의 아르코 아트페어에서 전시가 중단된 카탈루냐 분리·독립운동가들의 초상화, 피 흘리는 십자가 위로 개미들이 기어다니는 장면으로 기독교계의 반발을 사서 미국 스미스소니언미술관에서 전시가 중단됐던 미국 작가 데이비드 보이너로비치의 영상도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는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작품을 출품한 작가 90개 팀 중 12개 팀이 주최 측에 전시 중단을 요구했다고 NHK가 15일 보도했다. 전시 중단을 요구한 12개 팀은 한국 작가 2개 팀 외에 유럽, 중남미 출신 작가들이 10개 팀이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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