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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 미국 대통령 가문, 실리콘밸리 거물… 美·英 상류층 속살 드러낸 엡스타인 性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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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성범죄 스캔들' 확산… 특급 고객 접대 정황 드러나

미국의 '마당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66)의 미성년자 성범죄 스캔들이 미국을 강타한 데 이어, 영국·프랑스·이스라엘 등 해외로도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엡스타인은 막대한 부(富)와 인맥을 이용해 정계·재계·법조계·학계의 최상류층 엘리트 집단을 주도면밀하게 관리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성 노리개들을 특급 고객들에게 '접대'하는 미인계(honey trap)를 주요 수단으로 쓴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엡스타인은 14~20세 소녀 수십 명을 뉴욕 맨해튼 자택, 플로리다 팜비치나 버진아일랜드의 별장으로 유인해 수년씩 성노예로 삼은 혐의로 수감돼 재판을 받던 도중, 지난 10일 교도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는 교도소 안에서 자살하자 미 정치권 주변에선 '권력층의 타살 음모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은 그가 숨졌지만 11일 그의 별장을 압수수색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등 주변 인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엡스타인의 성노예 공급 창구가 된 파리의 모델 에이전시 회사 등을 상대로 수사가 시작됐다.

조선일보

그래프=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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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 시각) 엡스타인이 1년 전 인터뷰에서 "유명한 권력층 인사들의 성적 기벽이나 마약 복용 전력을 많이 알고 있다. 사진도 다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성범죄 수사망이 좁혀오던 상황에서 유력지를 통해 '날 건드리면 무사하지 않을 것'이란 말을 흘린 것이다. NYT 기자는 당시 맨해튼의 개인주택 중 가장 크다는 엡스타인의 집에서 그가 빌 클린턴(73) 전 대통령, 무함마드 빈살만(33) 사우디 왕세자,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 앤드루(59) 왕자 등 유력 인사들과 찍은 사진을 봤다고 전했다. 실제 엡스타인이 '블랙북'이란 수첩에 고객이나 친한 유명인에 대한 접대 내역과 특징을 자세히 기록해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73) 미 대통령의 경우 1980년대부터 엡스타인과 친분을 유지해왔다. 트럼프는 2000년 CNN에 "엡스타인을 16년간 알아왔는데 내 취향에 꼭 맞는 남자"라면서 "그의 곁엔 항상 어린 미녀들이 많다. 나도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엡스타인의 한 지인은 "1990년대 엡스타인이 '트럼프에게 먹이(여자) 좀 갖다주느라 늦었다'고 하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인 2002~2003년에만 엡스타인의 플로리다 별장과 아프리카 등에 그의 전용기를 타고 수십 차례 여행을 함께 다닌 기록이 발견됐다. 앤드루 왕자에 대해선 2001년 런던에서 엡스타인과 함께 음란 파티를 벌였다는 주장과 증거가 8년 전부터 제기됐다. 버지니아 로버츠(37) 등 엡스타인에게 소송을 한 피해자 두 명이 최근 "10대 때 앤드루에게 '대여'됐다"고 각각 주장하고 나왔다.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을 중퇴한 엡스타인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행장 딸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월스트리트에 입문했다. "1억달러(1200억원) 이하 자산 관리는 맡지 않는다"고 자랑했으며 "친구를 얻기 위해 돈을 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인맥 관리에 돈과 정성을 쏟아부었다. 특히 엡스타인은 최고 명문인 하버드대에만 최소 750만달러(90억원) 이상을 기부했고, 하버드 스타 교수인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앨런 더쇼비츠(80) 등과 자주 어울렸다. 특히 더쇼비츠 로스쿨 교수는 2008년 엡스타인이 처음 미성년자 성범죄로 기소됐을 때 변호를 맡아 특혜성 형량을 받아낸 1등 공신으로, '소녀 접대'를 수차례 받은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이 외에 엡스타인의 리스트엔 일론 머스크(48) 테슬라 회장, 제프 베이조스(55) 아마존 회장 등 실리콘밸리 거물, 영화감독 우디 앨런(83) 등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노벨상 수상자들이 포함돼 있다.

변변한 기반이 없는 엡스타인을 최상류층에 연결해준 핵심 고리는 그의 옛 연인 지슬레인 맥스웰(57)이다. 맥스웰은 영국 미디어 재벌이자 국회의원이었던 로버트 맥스웰의 막내딸로, 1991년 아버지 사망 후 미국으로 건너와 엡스타인을 만났다. 엡스타인과의 연인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으나, 맥스웰이 영국 왕실과의 친분 등을 기반으로 뉴욕 상류층으로 인맥을 넓힌 덕에 그의 '인맥 관리' 비서이자 집사로 최근까지 활동했다. 로버트 맥스웰과 친했던 트럼프가 그의 딸을 뉴욕 사교계에 소개했고, 앤드루 왕자가 맥스웰의 생일 파티를 여왕의 별장에서 열어줬으며, 맥스웰과 친한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가(家) 며느리의 주선으로 엡스타인이 클린턴 측에 접근할 수 있었다.

맥스웰은 엡스타인의 성범죄를 기획하고 운영한 핵심 공범, '포주'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약 2년 전부터 엡스타인과 떨어져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 피해자 진술이나 언론 취재에 따르면, 맥스웰은 1990년대 중반부터 요가 강사나 마사지사 모집 광고를 내거나 갈 곳 없는 소녀들에게 "모델 시켜주겠다" "대학 보내주겠다"고 속여 엡스타인의 거처로 부른 뒤, 그를 만족시킬 성행위 방법을 가르치거나 엡스타인의 고객에게 데려다주는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여성이 옛 연인을 위해 소녀를 동원한 성범죄를 저지른 기묘한 사건을 두고 "그런 식으로라도 엡스타인 옆에 있고 싶어 했던 것" "별다른 소득이 없는 맥스웰에게 엡스타인이 500만달러짜리 집을 사주는 등 후하게 보상해줬다"란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유대인인 로버트 맥스웰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비밀요원이었고 엡스타인도 유대계라는 점을 들어, 이 커플이 모사드 요원으로 각국 유력 인사의 약점을 잡아 옭아매는 첩보 활동을 벌인 것 아니냐는 설도 제기된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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